CJ푸드빌의 계절밥상.
CJ푸드빌의 계절밥상.
대기업이 ‘한식’에 빠졌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식 뷔페’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떠올리는 인테리어에 100여 가지의 진미를 선보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진출한 곳은 CJ푸드빌이다. 지난해 7월 ‘계절밥상’ 브랜드를 론칭했다. 론칭 2개월 만에 2호점을 오픈한 이후 11월 현재 총 7개의 매장을 열었다. CJ푸드빌이 보유하고 있는 빕스·비비고 등 기타 브랜드와 비교할 때 가장 빠른 속도로 확장 중이다. 11월 초 누적 고객은120만 명을 넘었다.

신세계푸드는 ‘올반’으로 한식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10월 여의도에 1호점을 오픈하고 11월 말 반포 센트럴시티에 2호점 문을 열었다. 하루 평균 1000~1300명이 방문하며 내부에서도 기대 이상의 반응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외식 사업의 주력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각오로 이마트를 포함한 다양한 복합 상권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이랜드에서도 ‘자연별곡’을 선보였다. 애슐리로 외식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랜드가 새로운 사업으로 한식 뷔페를 선택했다. 올해 4월 분당 미금에 첫선을 보인 이후 현재까지 15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성적표는 A에 가깝다. 매장에 따라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서고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100여 종의 메뉴에 디저트까지 갖췄는데 가격은 점심 1만3000원 선, 저녁 2만 원 선으로 뷔페치곤 저렴한 편이다. 흡사 2000년대 초·중반 패밀리 레스토랑의 인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TGI·베니건스·아웃백·마르쉐·씨즐러 등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몇 시간씩 줄 서서 먹던 풍경과 비슷하다.

한식 뷔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진화 버전으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1인 가구 증가, 불황에 따른 소비 침체, 업계 경쟁 심화 등으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서비스와 메뉴가 획일화되고 브랜드마다 할인 경쟁에 나서면서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후 등장한 대안이 시 푸드 레스토랑이다. 웰빙 열풍을 타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부각되면서 일부 대기업과 개인 중소업체들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30~40% 할인 경쟁이 시작되고 냉동 재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몇 개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문을 닫았다.

저가 식당과 한정식 중간 시장 공략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외식 브랜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신세계푸드가 2006년 야심차게 시작한 해산물 뷔페 ‘보노보노’는 현재 마포점과 삼성점 두 곳만 남겨 놓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이 밖에 딘앤델루카(식료품 브랜드)·자니로켓(햄버거 브랜드) 등 외식 사업을 펼쳐 왔지만 뚜렷한 성공작이 없었다. CJ푸드빌 또한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인 ‘시푸드 오션’ 매장을 모두 철수한데 이어 또 다른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인 ‘피셔스 마켓’도 모두 문을 닫았다.

최근 한식 뷔페 열풍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고전한 외식 업계의 새로운 돌파구다. 외식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려는 과정에서 나온 새 시장이다. 최근 ‘집밥 열풍’, ‘로컬 푸드’ 바람이 불고 있다는 데서 한식 트렌드를 읽었다. 가장 먼저 사업을 시작한 CJ푸드빌은 ‘한식 샐러드 바’ 개념을 도입했다. 한식 브랜드 비비고를 운영하며 한식 노하우를 갖춘 데다 17년간 운영한 빕스의 샐러드 바 노하우를 합쳐 계절밥상을 선보였다. 이랜드 또한 외식 브랜드 애슐리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한식에 접목해 자연별곡을 열었다. 한식은 기존 패밀리 레스토랑에 비해 고객 연령층이 다양하고 중장년과 가족 단위 고객이 많다는 데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봤다.
한식 중에서도 뷔페에 주목한 것은 한식의 틈새시장을 개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한식 시장은 양극화돼 있었다. 한 끼니 식사인 1만 원 이하 식당과 값비싼 코스 요리인 한정식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한식이 없었다는 데서 그 틈새를 뷔페로 찾았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한식 하면 집밥의 이미지가 강해 외식 업계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하지 않다가 기존 집밥과의 차별화를 연구하면서 한식 뷔페를 생각하게 됐다”며 “한식 세계화라는 대전제 아래 그동안 한식을 재조명하고 연구하려는 노력이 하나 둘 브랜드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식 비즈니스에서 관건은 한식의 핵심인 ‘손맛’을 표준화·계량화하는 것이었다. 한식의 기본은 재료에 있다. 신선한 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해 맛을 내고 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기업마다 나름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신세계푸드 올반은 ‘종갓집 메뉴’를 대중화하는 데 주력했다. 종갓집 음식 연구를 통해 창녕 조씨 명숙공 종가 길경탕, 보은 선씨 선영홍 종가 닭구이, 화산석 원형 가마에서 구워낸 가마고추장삼겹살 등 평소 접하기 힘든 다양한 전통 한식 메뉴를 만들었다. 지자체의 특화된 식재료를 메뉴로 구현해 차별화 포인트를 삼았다.

CJ푸드빌 계절밥상은 ‘농가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들고나왔다. 산지 제철 식재료를 우선으로 사용해 총 100여 종이 넘는 제철 메뉴를 선보였다. 동아·하얀민들레·마·오디 등 사용한 제철 재료로 약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철 신메뉴를 소개했다. 이랜드 자연별곡은 전국 팔도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로 궁중 음식을 재해석해 다양한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부뚜막을 활용한 메뉴대, 구절판 조명, 팔각소반 액자 등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강조한 인테리어와 소품으로 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이랜드의 자연별곡.
이랜드의 자연별곡.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 높아

대기업이 한식 뷔페에 빠진 또 하나의 이유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에 있다. 그룹 내 식품 유통 사업, 외식 사업 등을 하며 쌓은 ‘바잉 파워’로 산지 직송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 부문과 연계해 식재료를 싸게 공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 사업 시스템도 쉽게 구축할 수 있다. 계절밥상에선 면류는 CJ제일제당 제품을 사용하고 디저트로 투썸플레이스의 커피와 콜드스톤의 아이스크림을 사용하는 등 내부적으로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한식은 재료가 많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인건비가 적지 않다. 대기업은 이와 같은 기존 사업과의 연계 및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한식 뷔페는 남녀노소와 연령대 구분 없이 3대에 걸쳐 같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성의 매력을 찾고 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요식업에서 흔히 3회전을 하면 수익이 있다고 보는데 계절밥상은 모든 매장이 5~6회전을 하고 있고 점심시간 이외에도 모든 테이블이 꽉 차기 때문에 평가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외식 사업의 난제인 ‘출점 제한’에서도 한식 뷔페는 비교적 여유를 갖는다. 한식 뷔페 또한 동반성장위원회 권고에 해당돼 예외 조항이 있긴 하지만 기존 브랜드에 비해 출점 제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랜드의 애슐리는 전국 160개로 포화 상태에 있고 CJ푸드빌의 최대 외식 브랜드인 빕스는 전국 90개에서 3년째 매장 수가 늘지 않고 있다. 한식 뷔페는 아직 최대 7개다.

최근 한식은 ‘한식의 현대화’로 재조명을 받는 중이다. ‘한식대첩’이라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은 전국 팔도의 진귀한 식재료로 정성 어린 조리 과정을 보여주며 한식의 새로운 매력을 부각하고 있다. 이런 한식 트렌드는 외식 업계 전반적으로 뻗어가는 중이다. ‘한국 호텔에 한식당이 없다’는 지적을 받던 호텔 업계에서도 최근 한식당으로 전면 승부를 벌인다.

지난 5월 제주도에 문을 연 켄싱턴호텔은 이랜드호텔 내 처음으로 한식당을 열었다. 지난해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쳐 9년 만에 다시 개장한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은 특히 외국 비즈니스 고객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롯데호텔 한식당 무궁화는 50억 원을 들여 개·보수한 뒤 연간 매출이 약 60% 이상 뛰었다. 쉐라톤워커힐호텔은 한식당 온달·명원관 두 곳과 수펙스 김치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식 문화 발전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한편 창업 시장에서도 한식 트렌드가 돌풍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카페풍·퓨전·현대화를 키워드로 한식 돌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993호 제공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