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잃어버린 성장동력 찾기…규제부터 풀어라, 희망은 거기에 있다"
처음엔 비관적이었다. “한국의 미래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어렵고 험한 길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했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잃고, 장년 세대는 현실에 좌절하며, 노년 세대는 과거를 돌아볼 여유마저 잃어버렸다”며 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막판엔 “어렵지만 희망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시장경제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65). 청와대 경제수석,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 주미 한국대사 등을 지내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함께해온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는 쉬운 문제만 해결해 왔다”며 “진짜 어려운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잃어버린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개방’과 ‘규제 완화’밖에 없다”고 역설하는 한 회장에게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들었다.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과제’는 무엇을 뜻합니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어렵습니다. 노사문제, 교육개혁, 저출산 고령화, 복지 등의 문제는 사회적인 대타협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과제들입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 않나요.

“언뜻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특정 분파,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회와 정부가 그런 이들의 주장에 휘둘리는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국민은 결국 누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장 표를 얻기 위한 결정은 스스로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원칙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소규모인 데다 자원이 없는 우리는 반드시 개방경제로 가야 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활발하게 체결하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하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하는 것도 필수 과제입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잘사는 나라는 없습니다. 물론 사회적 안전망은 필요할 겁니다. 이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도 반대는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정치이고, 리더십입니다. 지금 그것이 필요합니다.”

▷개방과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1985년이었죠. 당시 상공부에서 근무했는데요. 7개 주요 산업분야 관련 진흥법이란 법이 있었습니다. 철강, 기계(자동차 포함), 비철금속, 조선, 전자, 섬유, 화학 등의 분야였습니다. 말이 진흥법이지 신규 진입 제한을 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죠. 산업 발전을 위해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고,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경쟁이 적정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적정 수준의 경쟁이란 걸 정부가 어떻게 안다는 겁니까. 그래서 공업발전법으로 모두 통합했습니다. 복잡한 규제를 하나로 통합한 다음 신규 진입 제한을 철폐한 거죠.”

▷결과는 어땠나요.

“놀라웠습니다. 경쟁을 확대하니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더군요. 고용도 늘고 경제 전체가 성장하게 됐습니다.”

▷정부마다 규제 완화를 강조하지만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금융산업의 낙후는 규제 때문입니다. 핀테크 같은 분야에서 한국이 이렇게 뒤처진 것은 모두 규제 망령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던 게임산업도 ‘셧다운제’ 같은 황당한 규제 때문에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산업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규제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적정 수준의 경쟁이란 것을 정부는 절대로 알지 못합니다.”

▷시급히 정비돼야 할 대표적인 규제는 무엇인지요.

“수도권정비계획법입니다. 만들어진 지 33년이 됐는데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수도권을 개발 못하게 묶어 놓으니까 수도권이 엉망이 됐습니다. 이 지역이 개발되지 않으니까 저부가가치 산업이 수도권에 묶인 채 난립하는 거죠. 경쟁을 하게 하면 수도권에 걸맞은 높은 부가가치 산업이 남고 다른 산업들은 전국에 흩어져 전국이 골고루 발전하게 됩니다. 가격을 통제하고, 신규 진입을 제한하고, 경쟁을 막는 그런 규제는 모두 없애야 합니다. 그런 규제는 기득권만 보호하고 혁신을 저해하게 됩니다.”

▷정부는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는데 기업들은 여전히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핵심적인 규제, 암적인 규제가 사라지지 않아서 그런 거죠. 고용시장 규제가 대표적입니다. 정년을 국가가 정하고 강제하는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 정도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어떻게 기업의 실적이나 경영을 책임질 수 있다고 정년을 강제한단 말입니까.”

▷저출산 고령화도 한 원인 아닐까요.

“물론이죠. 지금 젊은이들은 좌절하고 있습니다. 직장도 잡을 수 없고, 저축해도 집도 못 사고, 소득은 오르지 않고, 이러다 보면 부모에게 계속 기대 살아야 하나 걱정하면서 좌절하는 거죠. 젊은이들의 좌절을 풀어주기 위해선 취업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교육 개혁이 핵심입니다.”

▷교육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은 증명된 것 아닙니까.

“지금은 공부하기 싫어도 모두 대학에 갑니다. 대학 교육을 국가가 통제하고 시험방식을 규제하며 대학에 자율권을 주지 않으니 모두가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한 커리큘럼으로 하기 싫은 공부를 합니다.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 도태된 대학은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육이 살아요. 교육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

▷정부도 보육비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요.

“저출산 문제는 보육비 지원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교육비, 집값 등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불안하니까 애를 낳지 않는 거죠. 국가는 비용을 낮춰야 합니다. 경쟁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시장에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다양한 수준의 보육서비스가 등장하게 되고 사람들은 형편에 따라 선택하는 거죠. 모든 사람에게 보육비를 주고 그 가격에 맞춰서 보육 서비스를 하라는 것은 정말 이상한 규제입니다. 출산율 제고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출산율 제고 정책을 아무리 펴도 인구는 부족하게 될 겁니다. 이민밖에 답이 없어요. 언젠가 기업이 인력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는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기업들로 하여금 인력을 구하러 해외로 나가게 둘 것인지, 아니면 외국 인력을 적극 유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약력 △1949년 전북 전주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특허청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OECD 대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 △주미 한국대사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