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통 밑 고름' 규제는 손도 안대고 '손톱 밑 가시'만 뽑아…기업 떠난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외쳤다. 기업의 투자를 막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해 수도권 입지 규제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자연보전권역에 지을 수 있는 공장 부지 한도를 6만㎡에서 50만㎡로 확 늘려주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기업 K사는 투자계획을 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관련 법령을 개정하지 못했다.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도그마의 벽’을 넘지 못한 것. 지금까지도 수도권 규제 완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가 규제다. 수도권 입지 규제를 비롯해 파견업종 제한과 통상임금 범위 확대 같은 노동 규제, 대기업 계열사 간 출자 규제 등은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막는 핵심 규제, ‘염통 밑 고름’이다. 역대 정부가 규제 철폐를 추진했지만 수백건씩 풀었다는 규제는 인허가 절차 등 ‘손톱 밑 가시’들뿐이다.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핵심 규제들은 ‘성역’으로 남아 있다.

2008년 당시 정부의 수도권 규제 개혁 약속을 믿고 투자 검토에 나선 기업은 K사 등 74곳. 이들은 규제 완화가 불발되자 투자계획을 수정하거나 해외로 공장을 옮겼다. 국내 설비 투자는 정체돼 있지만 해외 투자액은 2009년 204억달러에서 2011년 276억달러, 지난해 306억달러로 급증한 이유다. 투자 규모와 전후방산업 유발효과까지 따지면 일자리 수만개가 날아갔다. 규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정상적인 공장 가동을 걱정하는 마당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 등 각종 환경 관련 규제는 내년 시행을 위해 대기 중이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2005년 전체 144개국 중 14위였던 정부 규제 부문 한국의 경쟁력 순위는 2008년 24위로 떨어졌다. 올해는 96위로 추락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가 손톱 밑 가시 뽑기에 급급할 때 핵심 규제에 숨이 막힌 기업들은 조용히 한국을 떠난다”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본사를 해외로 이전한다는 뉴스가 언제 현실화될지 두려울 뿐”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