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스키, 지난주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에 재정신청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81)의 '1977년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이 미국에서 38년 만에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폴란스키는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 항소법원에 자신의 사건을 담당한 검찰·법원의 불법행위를 심리하도록 증거 청문회를 열어달라는 재정신청을 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란스키가 제출한 재정신청에 따르면 LA 카운티 검찰은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지난 2009년과 올해 10월 각각 스위스와 폴란드 수사당국이 자신을 체포한 구체적 경위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LA 카운티 검찰은 이미 자신이 1977년 기소된 뒤 형벌을 받았음에도 이를 숨긴 채 범죄인 인도조약을 구실로 스위스와 폴란드 수사당국이 자신을 체포하도록 직권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폴란스키의 변호인 측은 스티브 쿨리 LA 카운티 검사가 주 검찰총장에 입후보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범죄인 인도조약을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쿨리 검사는 "그것은 도시괴담"이라며 "나는 직권남용을 하지 않았으며 폴란스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캘리포니아 주 항소법원이 폴란스키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내년 1월 청문회를 연다면 '폴란스키가 단순한 성추행 도망자냐, 아니면 검찰·법원의 직권남용에 따른 희생자냐'라는 실체적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질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폴란스키는 지난 1977년 3월 LA에 있는 배우 잭 니콜슨의 집에서 사만사 가이머(당시 13세)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결과, 폴란스키는 가이머에게 샴페인과 최면제를 먹였으며 성관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가이머의 고소에 따라 폴란스키를 체포했으며, 미성년자에게 술과 최면제를 먹이고 간음한 혐의 등 6개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

폴란스키는 가이머와의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고 그 해 12월 90일간 교도소에서 진단조사를 선고받았으나 42일 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로런스 리텐반트 판사가 추가 징역형을 내리는 선고재판 기일을 잡자 이듬해 1월 경찰의 눈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도주했다.

그는 이후 단 한 차례도 미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2003년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을 때도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실제로 폴란스키는 1997년 LA 카운티 지방검찰·캘리포니아 지방법원과 사건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재판심리 과정을 TV 생중계하는 문제가 발목을 잡아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 고등법원 래리 피들러 판사는 앨런 파라치니 법원 공보관에 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폴란스키 사건은 독이었다"고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파라치니는 "피들러 판사가 언급한 '독'은 1977년 폴란스키 사건을 맡았던 리텐반트 판사의 재판 과정을 의미한 것이며, 그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재심리를 맡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에는 유료 케이블 채널 HBO가 '로만 폴란스키: 원티드 앤드 디자이어드'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LA 카운티 지방검찰과 법원 간 담합 의혹을 제기했다.

리텐반트 판사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폴란스키를 치노 교도소에서 90일간 진단 조사를 받게 한 뒤 석방하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꿔 계속 구금하려 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항소법원 피터 에스피노자 판사는 "당시 법원 측이 폴란스키를 불공정하게 취급했다는 증거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폴란스키도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기 위해 미국에 돌아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폴란스키는 2009년 9월 취리히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기 위해 스위스로 입국하던 중 체포돼 10개월간 구금됐으며, 올해 10월에는 유대인 박물관 공개에 맞춰 폴란드를 방문했다가 폴란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1933년 8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3살 때 부모의 고향인 폴란드 크라쿠프로 이주한 폴란스키는 1940년 폴란드가 독일 나치군에 점령당하면서 유대인 '게토'(강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종전 후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왔지만 그의 어머니는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그는 또 1969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자택에서 '연쇄 살인마' 찰스 맨슨 일당에 의해 잔혹하게 피살되는 끔직한 불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폴란스키는 영화감독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jo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