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무모한 도전이란 없다"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창업자 겸 회장이 2001년 사실상 파산 상태인 국영 항공사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제 정신이냐”고 했다. 14년간 한눈 팔지 않고 음반업계에만 몸 담았던 그가 빚더미에 올라 있는 항공사를 인수하는 건 모두에게 일탈이자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회장은 1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했고, 9년 만에 아시아 최대 저가 항공사로 키워냈다. 그리고 13년간 성장 가도를 달리며, 항공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다. 그는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은 결과를 낳는다”며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무모한 도전이란 없다”고 항상 강조한다.

항공업계 문외한에서 전설이 되기까지

페르난데스 회장은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다. 인도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에 참여해 말레이시아에 왔다가 정착하게 됐다. 12세 때 그는 말레이시아를 떠나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방학에도 가족을 보러 말레이시아에 가는 건 쉽지 않았다. 의사인 아버지와 사업가인 어머니를 둔 그에게도 비행기 티켓은 너무 비쌌다. 그는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누구든 어디든 값싸게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생각이 훗날 페르난데스 회장이 항공업계에 뛰어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영국에서 명문 엡솜칼리지와 런던정경대를 졸업했다. 1987년 사회생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영국의 음반사 버진 레코드였다. 이곳에서 2년간 재무 담당으로 일했다. 그 다음 미국의 음반사 워너뮤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피아노와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룬 데다 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있어 음반사에서 빠르게 입지를 구축했다. 그는 워너뮤직에서 재무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말레이시아 법인 임원을 거쳐 동남아시아 법인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초고속 승진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며 14년간 음반업계에서만 근무했다. 그러던 그의 인생에 2001년 전환점이 생겼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워너뮤직의 모회사인 타임워너가 아메리카온라인(AOL)에 합병되자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갖고 있던 스톡옵션을 모두 처분하고 퇴직을 결심했다. 그는 항공사 문턱에조차 가본 적이 없었지만 어릴 적 비행기에 대해 가졌던 꿈을 위해 모험을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항공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강했다. 말레이시아는 새로운 항공사 인가에 인색했다. 그는 빚더미 국영 항공사를 인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1100만달러(약 119억3500만원)의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낡은 비행기 2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영 항공사를 샀다.

페르난데스 회장이 2001년 10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국영 항공사를 인수할 당시 회사는 실적 악화로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또 미국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항공업계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시아에는 조류인플루엔자까지 퍼져 항공업계 수요가 바닥인 상태였다. 이런 때 전 재산을 털고 집까지 저당잡혀 항공사를 사들인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망할 것이 뻔한 항공사를 왜 인수하느냐’는 이유였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그는 인수 1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10년이 지나서는 연매출 1조5000억원에 매년 3500만명의 승객을 실어나르는 아시아 최대의 저가 항공사로 도약했다. 출범 당시 2대였던 보유 항공기 수는 140여대로 늘었다. 2009년부터는 매년 스카이트랙스 선정 ‘세계 최고 저비용 항공사’로 뽑혔다.

성공 비결은 명확했다. ‘이제 누구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버스와 기차보다 싼 비행기 티켓을 내세웠다. 그러기 위해 항공업계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기내식과 음료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했다. 객실 승무원에게도 기내 청소를 시키는 등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다. 항공 마일리지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재이륙 시간도 단축하는 등 비용 절감을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소통과 뚝심…주목받는 ‘페르난데스 리더십’

페르난데스 회장은 해외 언론 인터뷰에서 항상 “사업가 기질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음악교사였던 어머니는 사업에 꿈을 품고 주방용품 판매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강조한 마케팅 원칙은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하기’였다. 어머니의 마케팅 원칙은 그의 경영 철학에도 어느새 녹아들었다.

그는 경영에서 혁신과 집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작은 회사를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른 항공사들이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를 도입할 때 그는 단종을 고집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낮은 가격과 가격 대비 높은 질의 서비스라는 대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음반사 출신인 그의 감수성도 에어아시아의 마케팅에 활용됐다. 에어아시아는 글로벌 자동차 경기와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후원하면서 인지도를 빠르게 높여 나갔다. 다른 항공사에 비해 발 빠르게 온라인 마케팅도 강화했다. 항공권을 상품으로 내걸어 소비자들이 에어아시아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빈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에어아시아는 가격에 민감한 승객만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초기 원칙에 여전히 충실하다. 비용 절감을 위한 아이디어는 현장을 중시하는 페르난데스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그는 한 달에 두 차례 이상 꾸준히 수하물 운반, 승무원 업무를 직접 수행한다.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직원들과 현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빨간색 야구 모자를 트레이드 마크처럼 쓰고 다니는 그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거부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회장실 문을 두드리라고 임직원들에게 말한다. 아직도 에어아시아가 새롭게 창출할 시장도 무궁무진하다고 믿는다. “없다고 믿기 때문에 없는 것이지, 생각해보면 새로운 시장과 기회는 널려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