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지원국 해제도 검토…미 외교정책 대변화
공화 일부 강경파 반발…"얻은 것 없이 모든 것 양보"


미국이 17일(현지시간) 대(對)쿠바 봉쇄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쿠바와 53년 만에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해 국내·외에서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양국의 국교 정상화는 단순히 쿠바와의 관계 회복을 넘어 큰 틀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당장 외교가에선 미국이 그동안 대표적 적성국이었던 쿠바와 관계회복에 나섬에 따라 북한을 비롯한 나머지 적성국에 대한 외교정책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특별 성명에서 "미국의 쿠바 봉쇄는 민주적이고, 번영하며 안정적인 쿠바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음이 분명해졌다"고 인정하고서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쿠바 내 미 대사관 개설을 비롯한 외교관계 회복에서부터 여행자유 확대, 수출입 품목 확대,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등 다양한 내용의 새로운 대 쿠바 정책을 발표했다.

양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1961년 이후 53년 만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공산화를 선언한 뒤 자국 내 미국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영화하자 미국은 1961년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이듬해부터는 금수조치를 취했다.

당시 미국이 쿠바에 대해 이처럼 강도 높은 조처를 한 것은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위기감 더불어 경제 보복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후 미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 쿠바 금수조치 유지 및 해제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며 수위에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 틀은 바뀌지 않았다.

1979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쿠바 여행금지 조치를 풀며 유화적 모습을 보였으나 198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를 다시 복원시켰다.

이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에 다시 여행규제를 풀고, 쿠바 내 위성TV와 이동통신 사업을 허용했으나 그 이외의 무역규제와 관련해서는 이전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쿠바 당국이 2009년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면서 양국 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

그러다 양측이 지난 1년여간 그로스 석방을 위한 물밑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관계 정상화라는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해 냈다.

구체적인 논의 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실무진의 협상을 거친 후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회장이 20여 분간 전화통화를 갖고 최종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53년 만의 관계 정상화 조치는 양국 정상의 결단과 더불어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봉쇄 정책은 중남미 지역과 전 세계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오히려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백처럼 미국 입장에선 중남미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연합(EU)조차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황에서 더는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쿠바로서는 1962년부터 계속된 고강도의 금수조치로 경제 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처지라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는 일종의 대세였다"면서 "두 나라 정상이 서로 필요에 의해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논의 착수에 합의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쿠바 국교 정상화가 미국의 대북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는 전망이 엇갈린다.

쿠바처럼 관계 정상화의 길로 갈 수도, 반대로 전 세계에서 북한만 더 고립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상반된 관측이 나온다.

'북한 고립론'은 쿠바와 북한 모두 미국의 적성국이긴 하지만 핵무기 개발 여부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양국이 다르다는 점에 기반한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일부 강경파 인사들이 국교 정상화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주목된다.

공화당 잠룡 중 한 명이자 쿠바 출신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백악관이 얻은 것은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쿠바에 양보했다"고 비판하면서 주쿠바 미국 대사관 개설 및 대사 임명에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si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