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중인 휴대폰 제조사 팬택의 김포공장은 지난 7월부터 생산이 중단돼 모든 라인이 비어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법정관리 중인 휴대폰 제조사 팬택의 김포공장은 지난 7월부터 생산이 중단돼 모든 라인이 비어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의 경기 김포공장 입구. 출근 시간이지만 한산하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매서운 칼바람이 더 춥게 느껴진다. 공장 안에 들어서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공장은 지난 7월부터 가동을 멈췄다.

17일 공장에 출근한 직원은 70여명. 3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이어 8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자 많은 직원이 정든 일터를 떠났다. 남은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유급휴직 중이다. 대낮에도 불 꺼진 공장. 일부 라인에만 불이 켜져 있다. 내일 출하하는 5000대의 ‘베가아이언2’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이번 출하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가슴이 먹먹하다.

○“베가야, 아프지마”

2011년 최고 매출을 달성했을 때 팬택 직원은 3400명을 넘었다. 지금 직원 수는 1500명. 그중 700명이 이달 1일 4차 유급휴직을 냈다. 팬택은 9월부터 돌아가면서 한 달씩 유급휴직제를 시행 중이다. 유급휴직제를 시행하면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서다. 한 달씩이라고 하지만 기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돌아와도 상황이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9월 초 휴직한 직원들은 한 달 뒤엔 상황이 개선되리란 기대를 품고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10월 초에 이어 11월 초에도 더 나빠지기만 했다. 이달 초 월급을 20% 추가 삭감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작년 8월 5~10% 삭감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월급을 깎아도 동요하거나 불만을 말하는 직원은 없다.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준우 팬택 사장은 “회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는 임직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고맙고 뭉클하다”고 했다.

“한 달 금방 가요” “김 차장님, 휴직 기간에 솔로 탈출하세요.” 휴직하는 동료들을 배웅하기 위해 퇴근길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기도 한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헤쳐나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동료의 위로다. “베가(팬택 스마트폰 브랜드)야, 아프지마.” 한 직원의 책상에 붙어 있는 메모다.
팬택, '벤처 신화'서 '떨이 매물'로
○제조업 벤처 1호

1991년 직원 6명, 자본금 4000만원으로 시작한 팬택은 창업 15년 만인 2006년 세계 7위, 국내 2위 휴대폰 제조사로 성장했다. 연매출 3조원을 달성해 ‘국내 1호 제조업 벤처’ 신화를 일궜다. 노키아 모토로라 등 공룡들이 차례로 스러져간 치열한 시장에서 팬택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 덕택이다. 팬택 임직원의 70%는 연구원이다. 23년간 연구개발(R&D)비로 약 3조원을 투자했다.

2007년 팬택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2006년 불어닥친 모토로라 휴대폰 ‘레이저’ 열풍과 국내외 금융환경 악화로 2007년 4월 첫 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팬택은 워크아웃 기간에도 기술력을 기반으로 발 빠르게 국내 스마트폰 시장 개척에 나섰다.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선 LG전자를 제치고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팬택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동안 휴대폰 시장 경쟁 양상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제품 성능이 비슷해져 기술력보다 마케팅, 자금력으로 승부하는 시장으로 변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역대 최장 기간의 영업정지에 들어갔다. 10월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으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반토막났다. 팬택은 직격탄을 맞았다.

법정관리 중인 팬택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빨리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팬택은 지난 20여년간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제조업 벤처기업”이라며 “팬택이 성공 신화로 남느냐 또 다른 실패 사례로 기록되느냐는 상징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