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무상복지 실체 알아야 복지가 좋아진다
올해 가장 반가운 소식 중 하나는 지난달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소득 상위계층을 제외한 선별적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66%에 달했다는 것이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이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심한 뭇매를 맞고 “공짜 집이 아니라 ‘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것”이었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사실이다.

이는 우리 국민이 올바른 식견을 발휘해 정치가들의 ‘공짜 약속’을 철회시킨 첫 사례다. 그간 한국에서는 ‘복지는 클수록 국민에게 이익이다. 복지 지출 비중이 너무 낮다’는 등의 복지 확대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국가 복지사업들이 줄줄이 파산위기를 맞고 결국 혈세로 메워야 함을 알게 되자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국민이 복지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것만이 장래 대한민국이 보다 건강한 복지시스템을 갖는 길임을 말해준다.

19세기 유명한 자유주의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모든 사람은 다 국가의 비용으로 살기를 원하면서, 국가가 그들의 비용으로 사는 것은 잊는다”고 말했다. 복지제도의 본질은 국민(A)으로부터 거둬 국민(B)에게 나눠주는 것인데, 그 중간에 정부(C)가 떼어가는 몫을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이르는 것이다. 돈을 걷고 분배하고 감시하자니 공무원, 관료기구, 협회, 기금 등 무수한 조직과 인원이 필요해진다. 예컨대 A가 100의 세금을 내면 C가 관리비로 20~30을 사용해 B는 단지 70~80의 복지만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제도는 자기 돈으로 제 것을 살 때보다 불가피하게 전 국민에게 큰 소비손실을 끼친다. 국민이 손해보는 몫은 정부를 살찌우고 정치가의 권력을 증대시키는 데 쓰여진다. 이렇게 국가 복지사업이 정부와 정치가의 역할과 권력을 키우므로 이들이 이를 지키고 확대하려는 본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복지계획이 “회사 돈으로 남의 점심을 사는 경우”와 같다고 비유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돈을 자신을 위해 쓸 때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가치를 얻으려 노력하지만, ‘타인의 돈으로 타인을 접대할 경우’ 비용을 절약할 인센티브도 손님의 입맛을 맞출 노력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낭비와 비효율이 복지 배급의 본질이 됨을 피할 수 없다. 병원에서는 과잉 진료로 환자 몸을 망칠 수 있고, 강제로 먹이는 무상급식은 아동들에게 배탈을 낼 수 있다. 복지 범죄도 피할 수 없다. “타인의 돈 100달러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돈을 100달러까지 쓴다 해도 손해가 아니다. 로비활동, 정치헌금 등 수많은 목적을 위한 지출은 순전한 낭비며, 납세자를 해치고 누구도 그것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다”고 프리드먼 교수는 설명한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복지제도가 반드시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복지제도는 올해 보았듯이 지속불가능하고 국가 및 국민의 이익도 해친다. 1970년대 말 정부가 국민복지시스템을 설계할 당시 경제는 연 10%대로 성장하고 평균 수명은 65세를 넘지 않아, 취업자는 수십년간 세금으로 기여하고 은퇴 후 곧 사망할 것이 예상됐다. 그러나 지금 경제성장률은 3%대로 주저앉고 노인들의 수명은 90~100세를 바라봐 취업 인구가 부양받을 인구보다 적어지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절실하게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욱 긴요하게 적절히 지원이 공급되도록 복지시스템이 재편되지 않는 한 이를 유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한국인들이 배움에 빠르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국민임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 국민이 적절한 지식을 갖게 된다면 과거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듯 복지에서도 세계에 모범이 될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대한민국에 정착시킬지 모른다. 이런 복지지식을 끊임없이 전파하고 교육을 선도하는 것이 오늘날 복지대란의 나라에 사는 언론, 지식인들의 시대적 사명일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