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틈새 스마트폰 '아카' 개발팀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스마트폰에 스토리를 담겠다는 게 개발팀이 1년간 고민한 화두였다.  LG전자 제공
LG전자의 틈새 스마트폰 '아카' 개발팀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스마트폰에 스토리를 담겠다는 게 개발팀이 1년간 고민한 화두였다. LG전자 제공
“뭐지?" LG전자 스마트폰 아카의 첫 인상은 특이함을 넘어 부담스러움이었다. 공학용 계산기에서나 본 슬라이드 커버라니. 터치할 때마다 여닫다가는 분실하기 딱이겠다 싶었다. 이름도 아카라니. ‘As Known As’, 별칭을 뜻하는 약자 a.k.a를 그냥 붙여 읽는 것도 영 어색하다. 화면에 눈까지 달렸다. 스마트폰과 장난감 사이에서 ‘썸’을 타는 너. 영화 ‘올드 보이’ 압박용 질문이 떠오른다. “누구냐 넌?”

아카 개발팀을 만났다.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느냐고 앉자마자 물었다. “지구 아니 태양계 최초 참여형 폰이죠. ‘인터스텔라’ 블랙홀 반대편에는 있을 수 있지만요.” 대답부터 심상찮다 이 사람들. 개성 극대화 스마트폰을 표방하며 세상에 나온 아카. 1년간 좌충우돌 탄생기를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그래야 이해가 좀 쉽다.

○틈새를 찾아라

지난해 전 세계 전자업계는 스마트폰 수요 포화 공포 속으로 빠져든다. 2009년 아이폰 혁명 이후 3년간 전자산업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압축 성장한 스마트폰도 피로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전 세계 보급률은 70%를 넘어 추가 판로를 찾기 힘들었다.

획일성은 필연적으로 스마트폰 시대의 그늘이 됐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애플 아이폰 아니면 삼성의 갤럭시를 썼다. 누구나 좋아할 제품을 만들고, 많이 팔아 점유율 경쟁에서 승리하자는 것이 업계의 지상 과제였다. 산업 역사가 증명하듯 성숙기로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의 과제도 아직 수요가 남은 틈새시장을 치고 들어갈 세그먼트 제품을 찾는 데 쏠렸다.

○DIY & 밀레니얼

빅데이터는 소비 트렌드가 ‘DIY(Do It Yourself)’라고 일러줬다. 필요한 제품은 원하는 대로 ‘직접 만들라’는 DIY 광풍이 시장을 강타했다. 가구뿐만 아니라 구글의 아라 프로젝트처럼 스마트폰도 조립해 쓸 수 있는 시대가 영글고 있었다.

DIY에 열광한 세대는 기성제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였다. 아카 개발팀은 이들을 밀레니얼(Millennial)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서 1982~2000년에 태어난 신세대를 뜻한다. 베이비붐 세대 이후 가장 큰 인구를 자랑한다. 대중문화를 숨 쉬듯 소비하고 자라났고 구매력도 상당하다.

문제는 밀레니얼은 꽤나 까다롭다는 점이다. 이들은 항상 제품을 의심했다. 비판적 사고는 참여의 출발점이다. 참여와 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이들의 지갑을 열 수 있었다.

○BMW와 미니

LG전자의 밀레니얼 10여명이 아카 개발팀에 합류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확 띄는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전통과 품위를 자랑하는 자동차회사 BMW가 만드는 미니처럼 말이다.

우선 텅빈 캔버스 같은 커버를 달아보기로 했다. 성인 남성 손바닥만한 커버 위에 그림을 그리든 스티커를 붙이든 거울을 달든 마음대로 DIY하라는 메시지였다. 내부 격론이 일었다. 아무리 밀레니얼이라 해도 능동적으로 커버를 꾸미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결론은 ‘밀레니얼이기에 가능하다’였다. 획일적인 디자인을 버리고 소비자가 참여하는 제품을 만들자가 아카 제1의 존재 이유였다. 세계 최초 전면 슬라이드 커버 ‘마스크’는 이렇게 탄생했다.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카 스페이스도 개발했다. 개성 있게 장식한 마스크 사진을 공유하는 온라인 놀이터를 마련한 것이다.

마스크 위 화면에 눈동자도 넣었다. 친구와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듯 제품과 ‘아이 콘택트’를 통해 친근감을 느끼도록 했다. 게임 점수처럼 아카 사용지수도 개발했다. 커버를 여닫고 기능을 쓸수록 레벨이 상승한다. 친해졌다는 뜻이다.

○스토리의 생명력

늘 사랑에 빠지는 ‘에기’, 욱하는 악동 ‘우키’, 음악만 듣는 소심이 ‘소울’,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요요’ 등 아카 모델은 네 가지. 젊은 층 보통 성격을 이들 캐릭터에 압축했다. 모델별로 사용자 화면(UI)도 차별화했다.

‘양날의 칼’ 기획이었다. 출시 초반 홍보 차별화에 유용하지만 캐릭터마다 스토리를 끊임없이 발굴하지 않으면 이내 생명력을 잃는다. 게다가 사용자는 따분한 것에는 빛의 속도로 식상해하는 밀레니얼이다. 아카팀은 현재 ‘아카 스토리’를 작가, 게임개발자, 화가 등 다양한 문화집단과 함께 개발 중이다. 영웅 배트맨의 탄생 이유를 거슬러 그려낸 영화 ‘배트맨 비긴즈’와 비슷한 ‘아카 비긴즈’다. 스토리가 탄탄히 구축되면 향후 게임으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하드웨어 제조사인 LG전자는 생소한 스토리 창작 영역에 발을 디디고 있다. 아카가 문화 상품으로 성장해야 스마트폰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아카의 생명력은 그래서 미래의 잠재력에 있다. 그 이야기는 내년 초 공개된다.

김민성 한경닷컴 기자 m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