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소재평가센터 책임연구원은 알루미늄 양극산화를 연구해 산화막 표면에 나타나는 나노 크기의 벌집 모양 패턴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이 패턴은 나노 소자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이바지할 전망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이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소재평가센터 책임연구원은 알루미늄 양극산화를 연구해 산화막 표면에 나타나는 나노 크기의 벌집 모양 패턴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이 패턴은 나노 소자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이바지할 전망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자연계에는 생명이 있든 없든, 질서 정연한 구조가 나타나는 일이 자주 있다. 철새가 무리 지어 날아가거나 수많은 별이 모여 은하계를 형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어떤 의지가 작용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떤 질서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이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소재평가센터 책임연구원은 “금속인 알루미늄 표면에서도 산화막을 이루는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나열되는 구조가 나타난다”며 “이런 ‘자기 조립’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하고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물질에 대한 많은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화된 알루미늄 표면에서 나타나는 이런 패턴은 생체모방 멤브레인(박막), 고감도 센서, 메모리, 고효율 에너지 수확 및 저장 장치 등 다양한 나노소자 개발에 활용된다. 10여년 전 박사 과정을 밟을 때부터 알루미늄 ‘양극산화’를 연구해 온 전문가인 그의 논문은 최근 화학분야 최고 권위지인 케미컬리뷰 표지를 장식했다.

◆벌집 모양 패턴의 비밀

알루미늄은 철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는 금속이다. 가볍고 열·전기 전도와 광학적 특성이 탁월해 항공기, 자동차, 건축자재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면이 무르고 쉽게 부식되는 특성 때문에 알루미늄 제품 표면에 산화막을 씌우는 양극산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양극산화는 금속의 내식성 내구성 접착성 등을 강화하기 위해 금속 표면을 산화시켜 얇은 막을 입히는 기술이다. 양극산화를 하면 알루미늄이 다이아몬드에 버금갈 정도로 단단해지고,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양극산화를 마치면 알루미늄 표면에 ‘알루미나’라고 부르는 다공성 산화막이 만들어진다. 이 연구원은 “두께가 1나노미터에 불과한 얇은 막”이라며 “벌집 모양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산화막 자체보다 벌집 모양 패턴에 학계의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이 연구원의 연구 주제도 이 패턴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있다. 그는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나노 크기의 구멍이 매우 균일하게 정렬된 구조”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붕어빵을 찍어내는 틀처럼 다공성 알루미나를 나노선과 나노튜브 나노점을 합성하는 주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나노 크기로 소재를 만들려면 덩어리에서 깎아내거나 원자나 분자를 쌓아올려야 한다”며 “반면 알루미나를 틀로 쓰면 보다 쉽게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금속 외에 세라믹이나 반도체, 고분자, 바이오 물질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나노구조물을 만들기에 접합한 점도 나노다공성 알루미나의 장점이다. 아연산화물을 나노막대로 만들어 세포 내의 수소 이온 농도(pH)를 재는 바이오센서로 이용하는 연구는 이미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연히 복사된 논문에 마음 바꿔

박사 과정에서 연구 주제를 찾을 때 그의 마음을 이끄는 계기가 찾아왔다. 어느날 한 논문 맨 뒷장에 함께 복사돼 있던 알루미늄 양극산화 논문 일부를 보게 됐다. 이 연구원은 “초록을 읽는 순간 이것으로 학위 주제를 제안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을 정도로 흥미를 유발했다”고 말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독일 할레에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로 간 이유도 그곳이 알루미늄 양극산화 연구를 선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알루미늄 양극산화에 대한 연구는 텅스텐 지르코늄 마그네슘 등 다른 금속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다른 금속에서도 잘 정렬된 다공성 금속산화막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새로운 반도체 소자, LED(발광다이오드) 소자, 에너지 변환 소자 개발의 원천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