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의료분쟁 조정 강제화 '신해철法' 필요한가
가수 신해철 씨가 장 협착수술 후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의료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환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이나 중재를 신청해도 병원이나 의사가 거부하면 조정이 시작되지 않는 현행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환자단체연합회 등은 병원이 의무적으로 조정에 참여하도록 강제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일명 신해철법)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접수된 3021건의 조정 신청 중 1787건(59%)은 병원이나 의사의 불응으로 개시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조정제도 때문에 분쟁이 제대로 조정이 안 될 경우 의료소송으로 이어져 사회적 비용은 더욱 커지고 환자의 권리 또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은 신해철법이 참여자의 자율적인 협상과 조정에 맡기자는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입법화를 반대한다. 조정절차 자동개시로 의료인들이 방어진료에만 전념하게 되면 결국 국민 피해만 커진다는 논리다. 또 수련의들이 외과 등 의료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전공과목을 기피하는 현상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분쟁조정절차 개시를 자동화해야 할지를 두고 김민중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강청희 의협 상근부회장이 각각 찬성론과 반대론을 내놨다.

찬성 의료기관 불참땐 환자만 피해…절차 개시 막는 현행법 불합리

최종조정은 양측의 동의로 가능

[맞짱 토론] 의료분쟁 조정 강제화 '신해철法' 필요한가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의료기관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이 같은 근본이념과 목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임의적 조정절차 참여주의로 제도의 실질적인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환자가 조정신청을 해도 의료기관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통지한 후에야 조정절차가 개시된다. 의료기관은 조정에 응할지 아닌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고, 어떤 사유로든 조정에 응하고 싶지 않다면 아예 조정절차를 거부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동의를 거부하면 환자가 조정신청을 해도 시작조차 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조정신청 건수 중 의료기관의 조정참여율은 2012년 38.6%, 2013년 39.7%밖에 되지 않는다.

애써 조정신청을 하고도 의료기관의 무조건적인 거부로 조정절차가 개시조차 되지 못하면 환자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의료분쟁조정절차 개시가 불발되는 경우에도 강제적 조정개시가 이뤄지는 한국소비자원에 다시 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많다.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환자에게 이중의 불편을 주고 있는 셈이다.

조정이 아무리 당사자 간 자율적 분쟁해결제도라고 할지라도 환자가 신청하면 의료기관은 당연히 의료분쟁조정절차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의료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상·최선의 방법으로 의료분쟁조정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는데도 의료기관의 불참으로 조정절차가 시작될 수조차 없다고 하면 의료분쟁조정의 기능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분쟁조정절차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최종 조정은 당사자 양쪽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하다. 때문에 아예 조정절차 개시 자체를 막고 있는 현행 제도는 타당치 못하다.
[맞짱 토론] 의료분쟁 조정 강제화 '신해철法' 필요한가
다른 법률에서 조정제도를 운용하는 방식을 보면 의료분쟁조정법과 같이 임의적 조정절차 참여주의를 택하고 있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 피신청인이 의무적으로 조정절차에 참여해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언론중재제도에서 언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정정보도청구 등과 관련해 분쟁조정 신청을 하면 지체 없이 조정기일을 정해 당사자에게 출석을 요구하고 조정절차에 들어간다. 개인정보와 관련한 분쟁조정을 신청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분쟁조정 통지를 받은 공공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분쟁조정에 응해야 한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에 관한 분쟁조정에서도 조정절차가 강제적으로 시행된다.

그러므로 조정이 당사자 간 자율적 분쟁해결제도라는 이유로 반드시 그 참여 여부에 대한 권한까지 당사자 자율에 맡겨야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조정제도와 마찬가지로 의료분쟁조정절차에도 필요적·강제적 조정절차 참여주의를 채택할 법적 타당성은 충분하다.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조정성립률은 2012년 82.3%, 2013년 90.7%라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의 단순 거부가 인정되는 한 의료분쟁조정제도는 반쪽의 성공밖에 거둘 수 없다. 환자가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기관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일단 조정절차가 개시되도록 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강제적 참여제도가 도입돼 하루 속히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정상궤도에 진입하기를 기대한다.

반대 조정 강제시 소송법 침해 우려…합리적 개선책 마련이 우선

환자부담 가중 등 사회적 비용 증가

[맞짱 토론] 의료분쟁 조정 강제화 '신해철法' 필요한가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분쟁의 조정·중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조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피해자와 의료인 간의 자율적이고 원활한 조정·중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소송 이외의 다른 조정·중재에 대한 강제적인 규정이나 제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재원 부담 주체를 비롯해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내 감정부 구성이 대다수 비의료인으로 꾸려져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 결과, 실제 의료분쟁조정원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대해 법안을 개정, 제도적으로 힘을 실으려 하는 시도가 있다. 의료계 입장에선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법 개정을 통해 의료분쟁조정 개시를 강제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강제화는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제다.

조정을 강제화한다는 주장은 당사자의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분쟁을 유연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조정 제도 목적에 근본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입법 취지에도 반하는 접근 방식이다. 조정의 당사자가 조정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 조정절차 진행을 강제화하는 것은 피신청인의 권리를 국가가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소송과정 이전에 거치는 법적 단계도 늘어나게 된다. 이는 의료분쟁 조정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킬 것이다.
[맞짱 토론] 의료분쟁 조정 강제화 '신해철法' 필요한가
당사자들의 소송권을 침해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1998년 3월 개정된 행정소송법에서는 행정소송 과정에서 적용된 행정심판 전치주의(행정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관할 행정청에 대한 행정심판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이해당사자의 소송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된 것이다. 이 같은 입법 취지를 무시한 채 오히려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조정 절차를 강제화하는 것은 의료사고 당사자들의 소송권을 침해하고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통상 의료소송에서 환자와 의사 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의사가 유리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조사한 최근 3년간 의료사건 현황에 따르면 소송 이전 합의된 건수는 1616건이었다. 소송으로 넘어간 건수는 234건에 불과했다. 이 중 의료인이 소송에서 승소한 경우는 17건인 데 반해 환자 측이 승소한 경우는 134건으로 월등히 많았다. 소송이 무조건 의사에게 유리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의료계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과 중재 과정을 신뢰하고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는 현재 파행을 겪고 있는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정상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조정 강제제도를 도입하기보다 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통해 이해당사자들이 마음 놓고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의료인에게 이중의 금전적 책임을 지우는 불합리한 대불금 조항, 예컨대 과실이 없는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 재원을 분만 의료기관에 분담시키는 관례 등도 개선돼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재원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준혁/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