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新기술 막는 분양가 상한제] 세계적 설계자에 맡기고 싶어도…분양가 규제에 막혀 꿈도 못 꿔
“123층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최대 초고층설계업체인 미국의 KPF가, 화성 동탄2신도시 내 주상복합상가 ‘카림 애비뉴 동탄’은 세계 3대 상업시설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이집트 출신 카림 라시드가 설계했어요. 하지만 아파트는 그런 사례가 없습니다. 입지 여건에 맞춰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계자에게 맡기고 싶어도 분양가 상한제 아래에선 ‘그림의 떡’입니다.”(S부동산개발업체 김모 대표)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국내 주택시장을 하향 평준화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당수 분양가 책정 항목이 원가 수준에서 가격이 정해져 있어 새로운 주택기술 적용은커녕 고품질 건자재 사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향 평준화되는 주택산업

최근 수도권 서남부 지역에서 1000여가구의 아파트를 분양한 D건설은 당초 계획한 200만화소 폐쇄회로TV(CCTV·단가 50만~55만원) 대신 53만화소(30만~35만원)의 제품을 설치하기로 했다. CCTV가 단지 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제품이 기본형 건축공사비에 포함돼 있어 추가 공사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CCTV는 한 사례일 뿐 신기술, 고품질 제품을 적용하지 못해 품질 수준을 낮추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분양받은 청약자들이 입주할 때 내부 시설을 뜯어내고 새로 인테리어를 꾸미는 일이 생기는 건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일반 상품 가격은 시장 수급과 제품 품질 등에 영향을 받지만 분양가 상한제는 전국의 모든 공동주택 원가를 동일하게 규정한다”며 “국내 주택 품질을 끌어내리는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기본형 건축비는 매년 3·9월 국토교통부가 고시하는 데 주변시세, 거주 수준 등을 감안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 강남지역과 지방 중소도시 건축비 기준이 같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지능형 주택 설비와 친환경주택 건설 비용에 대해 가구 수 등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건설사들이 고품질 자재 사용을 꺼리는 이유다.

◆5년간 국회에 묶인 분양가 상한제

분양가 상한제는 2009년부터 폐지 방안이 검토돼 왔다.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진 상태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올 연말 국회에서도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난항을 겪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정부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요구한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등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막기 위해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 택지에서만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하는 공공택지는 여전히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민간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와 공공택지 아파트의 서로 다른 분양가 책정 방식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 일각에서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의 분양가 상승을 이유로 민간 택지에 한정한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반대하고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면 도심에 양질의 주택 공급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