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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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전문대는 4년제 대학과 다릅니다. 이걸 확실히 해야 합니다. 좋고 나쁜 우열 관계가 아니라 기능과 역할이 다른 거죠. 독일 같은 선진국 보세요. 우리도 무조건 4년제대 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전문대만 졸업해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이승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58·사진)은 ‘전문대 역할론’을 거듭 강조했다. 4년제와의 영역 다툼보다는 사회적 비용 차원에서 학력과잉을 잡아야 한다는 것. 그는 전문대가 고등직업교육 중심기관 역할을 통해 인정받을 때 우리 경제의 기초가 탄탄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모두 4년제에 가려고 하면 학력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밖에 없다” 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마이스터고 육성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산업체가 고졸 인력에 만족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대가 이러한 사각지대를 소화해 맞춤형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9월 회장에 취임한 그는 전문대의 비전을 ‘커뮤니티 칼리지’로 제시했다. 지역 사회와 기업의 필요에 부응해 기능인·직장인을 길러내는 밀착형 대학으로 요약된다.

이 회장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심화되면서 대학은 학령인구 부족, 기업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함께 겪을 것” 이라며 “제2의 직장을 원하는 사람이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평생직업교육’, 외국인 유학생 교육을 통한 ‘산업인력 공급’이 전문대의 살 길”이라고 역설했다.

수업연한 다양화, 산업기술명장대학원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전문대 관련 법안 통과를 정치권에 당부했다. 정부 부처 간 직업교육 중복투자 문제를 해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주문했다.

“전문대가 일반 시민으로서 행복을 찾는 기능인과 직장인을 길러내는 곳이자 전문대만 나와도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싶다”는 이 회장을 25일 서울 중림동 전문대교협 회장실에서 만났다.

/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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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대교협 회장으로서 바라보는 전문대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동안 전문대가 직업교육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약 540만 명의 산업인력이 전문대를 거쳐 갔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인식이나 걸맞은 대우가 부족했죠. 사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직업교육을 국가가 지원하거나 운영합니다. 우리나라도 전문대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하고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4년제대 진학 못한 학생들이 전문대 간다는 인식을 깨뜨릴 때가 됐어요. 독일처럼 돼야죠. 현재 구조에선 전문대 학생이 4년제대 학생에 열등의식을 갖고, 사회 전반적으로 학력 인플레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정부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이스터고를 육성했어요. 그런데 정작 산업체가 고졸 인력에 만족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전문대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 구체적 방안이 궁금합니다.

“분야별로 차별화가 돼야 해요. 모든 직무 분야를 4년씩 배울 필요가 없거든요. 예컨대 요리, 피부미용 같은 분야는 전문대 2~3년 교육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자꾸 4년제가 이 분야를 키웁니다. 물론 학력이 더 높아져서 나쁠 건 없죠. 하지만 교육에도 사회적 비용 개념이 필요하다고 봐요. 학비로 연간 1000만 원씩이 더 들어가면 사회 전체 부담이 커지니까요.

전문대를 졸업하든 4년제대를 졸업하든 대우에 차이가 없는 분야가 꽤 있어요. 일찍 기술을 익혀 명장이 되는 게 더 나은 겁니다. 독일은 아예 중학교 때부터 나누잖아요. 그러면서도 기능인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고 자부심을 느끼는 문화가 형성돼 있죠. 유명 요리사 에드워드 권 같은 분은 전문대 출신이지만 자기 분야에선 알아주지 않습니까.”

- 무조건 4년제대로 갈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제 딸아이는 플라워디자인 한다고 해서 계원예술대에 보냈어요. 4년제대에는 마땅한 전공이 없더군요. 전문대에서 공부하고 현업에서 일하다가 필요하면 단기교육 코스를 이수하면서 전문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일단 4년제대 가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대기업 준비하다가 안 되면 다시 전문대로 U턴 하고… 이런 건 문제란 거죠. 사회적 낭비 아닐까요.”

- 사회적 비용 낭비가 심한 듯합니다. 4년제가 전문대보다 취업률이 낮죠.

“전문대가 4년제보다 낫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둘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전문대 졸업하고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면 4년제대 진학해도 돼요. 그런데 꼭 4년제에 안 가도 되는 기능이 있거든요. 무조건 가는 게 문제란 거죠. 직업인이나 기능인 배출에는 전문대가 강점이 있어요. ‘전문대만 나와도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 전문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아직 과도기로 보입니다.

“지금 국회 계류 중인 전문대 관련 법안이 있는데요. 보통 전문대가 2~3년제로 운영되잖아요. 수업연한을 1년부터 4년까지 다양하게 바꾸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간호사의 경우 4년제 운영이 의무화돼 전문대 간호학과도 4년으로 늘어나는 식이죠. 전문대에 명장대학원을 운영하는 방안도 포함됩니다. 기능과 분야의 차이가 있을 뿐, 4년제와 동등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각인시키려 합니다.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적극 알리고 있어요.”

- 전문대의 차별화된 역할은 뭔가요.

“저출산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40대에 경력 단절된 여성들, 50대에 새로운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 전업을 원하는 근로자들이 생겨나요. 새로운 기능을 배우고 싶어하는 수요가 많아질 겁니다. 4년제대는 학문과 연구, 폴리텍은 실업자 재취업이나 근로자 보수 훈련에 특화됐다면 ‘평생직업교육’ 기능은 전문대가 맡아야죠.

앞으로는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크게 줄고 중소기업 인력이 부족해질 겁니다. 외국인 근로자 활용이 불가피한 상황이 오겠죠. 외국인 유학생을 학문 연구에 국한시켜 받을 이유가 없어요. 줄어드는 산업인력, 중소기업 저임금군 인력을 받아서 훈련시키는 역할을 전문대가 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인력구조 문제가 크긴 합니다.

“관점을 바꿔야 해요. 지금은 웬만해선 위장취업, 불법체류로 몰아버리는 경향이 짙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군산 군장대) 학생들도 중소기업 갈 생각을 안 하거든요. 현대자동차, 두산인프라코어 같은 대기업에서 생산인력으로 데려갑니다. 지금처럼 외국인 근로자에게 폐쇄적이면서 국내 인력은 안 가는 식이면 중소기업이 다 망할 겁니다.

유학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죠. 두뇌를 키우는 유학 못지않게 이런 인력을 키우는 유학도 필요합니다. 고숙련 정규직도 필요하지만 저숙련 비정규직, 보조근로자도 있어야 하는데 못 구해요. 하나는 앞서 말한 평생직업교육 시스템 , 또 하나는 유학생 교육을 통한 산업인력 보충. 전문대가 이 두 가지 수요를 해결해야 합니다.”

- 전문대가 산업인력 교육과 공급을 맡겠다는 것이군요.

“중소기업이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직접 가르치기가 어렵습니다. 전문대가 매개가 되면 훌륭한 교육이 가능하죠. 산업체도 비용을 댈 용의가 있다고 해요. 6개월 정도 전문대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산업체가 해당 교육과정에 장학금을 주는 방식이 되겠죠. 그리고 졸업 후 해당 기업에 취업하는 시스템이 되면 윈-윈(win-win)할 수 있습니다.”

- 말씀대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정부가 안 바뀌고 있습니다. 툭하면 불법체류, 위장취업 취급하는데 인식이 바뀌어야죠.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모두 겪고 있는 문제예요.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여 문제를 해결하거든요. 우리나라도 대학들이 인근 산업체와 연계가 돼 있어 외국인 유학생 교육과정을 만들고 운영권을 주면 중소기업들이 살 수 있죠.”
/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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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대를 어떻게 특성화 할 생각입니까.

“이제 특성화 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우리 대학 요리과는 인근 4년제대에 유사 전공이 생기니까 학생들 지원이 확 줄었어요. 교수가 직접 발로 뛰면서 싱가포르 호텔로 매년 몇 명씩 취업시키고 라마다호텔과 연계하고 동남아로도 보냅니다. 그걸 보고 학생들이 오더군요.

사실 요리에 4년제 과정이 크게 필요한 건 아니거든요. 2년 교육 마치고 창업할 때 다시 관련 교육을 받는 거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도 8개 모듈에 걸쳐 2년 과정으로 운영됩니다. 우리 전문대들도 2년간 전문 분야를 공부하고 필요에 따라 3~4학년 때는 창업이나 회계 부문을 가르치는 모델이 돼야겠죠.”

- 대학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전문대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전문대, 4년제대를 막론하고 대학구조조정은 불가피합니다. 다만 대학을 100개 가량 없앤다는 게 구조개혁 초기 정부의 생각이었는데요. 저는 폐교보다 각 대학 정원을 줄이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 문을 닫아버리면 지역사회가 아주 황폐해져요. 불법을 자행하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다 같이 덩치를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 결국 전문대만의 비전이 필요한 대목 아닌가요.

“지역에 밀착된 커뮤니티 칼리지가 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학생 수가 줄고 대학 공간이 많이 남는다고 하면 대안이 없나요? 아니죠. 지역주민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평생교육 역할을 맡는 겁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교양강좌, 문화강좌를 대학에 위탁하는 방안도 있어요. 자꾸 뭔가를 만들고 비용을 부담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 지역 사회, 기업과 같이 가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대학이 학생교육 뿐 아니라 인근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면 됩니다. 이제 대학도 산업체와 같이 하지 않거나 산학협력이 안 되는 곳은 학생들이 안 와요. 대학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고, 산업체 역시 ‘원하는 인재를 대학이 못 보내준다’고만 얘기할 게 아니라 인근 대학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죠.

태양광업체 OCI가 우리 학교 인근인 군산에 있는데, 협의를 통해 채용형 계약 교육과정을 개설했어요. OCI 맞춤형 교육과정을 만들어 연간 100명씩 10년간 졸업생을 주기로 했습니다. 식품업체 참프레도 기계 분야 인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계 전공에 식품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넣었죠. 이런 방식의 지역 산업체와의 협력이 지역 전문대가 살 길입니다.”

- 산학협력, 현장교육을 강조하는데 새로운 학과를 만든 게 있나요.

“학생이 잘 안 오는 학과는 폐지하고 산업체 맞춤형 학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애로점이 있었죠. 산업통상자원부에선 맞춤형 학과 설립을 유도하는데, 교육부 평가에선 불이익을 받는 겁니다. 주로 남학생들이 입학하는 학과이고 학사과정이 4년제보다 짧아 한꺼번에 군입대를 하게 되거든요. 학생 충원율 지표 점수가 너무 낮아 결국 재정지원을 못 받게 됐죠.”

- 정부에도 오래 있었는데 불합리하다고 건의하지 않았습니까.

“건의했지만 설득이 안 됐죠. 지표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젠 그 대학평가 방식이 없어져요. 문제는 정부 재정지원을 못 받는 동안 100억 원 이상 적립금을 사용했는데 이번엔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 대출이 안 되는 겁니다. 교육부는 유보금을 쓰라고 하고, 사학진흥재단은 ‘재정위험대학’으로 분류하고… 이렇게 정부 부처와 유관기들도 엇갈리더군요. (웃음)”

- 전문대교협 회장으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없습니까.

“지난해 시작한 전문대학 엑스포 행사는 계속 살려나갈 겁니다. 입시 시기에 맞춰 개최할 방침입니다. 올해 처음 연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박람회도 이어나가야겠죠.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전문대 출신의 능력을 알릴 수 있는 이벤트를 몇 가지 구상하고 있습니다. 호텔 주방을 맡는 요리사들 가운데 전문대 졸업생들이 많거든요. 대사관과 협조해서 국제 요리경연대회를 벌이고, 한식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의 방식으로 ‘전문대만 나와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생각입니다.”

◆ 이승우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사를 거쳐 성균관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받았다. 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순창군수, 전북 정무부지사, 중앙공무원교육원장(차관급)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8년부터 군장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며 전문대학 기관평가인증위원장, 한국스포츠산업협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전문대학법인협의회장, 전북 교원단체총연합회장을 맡고 있으며 올 9월 전문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한경닷컴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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