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16 컴퓨터는 1970년대급
현재 한국 영공을 지키는 전투기의 핵심전력은 F-16 시리즈이다. 공군은 1986년부터 2004년까지 180여대를 도입,현재 170여대를 운영중이다. 초기형 F-16 40여대는 미 정부와의 계약을 통한 대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사들였다. 후기형 모델인 KF-16은 미국 록히드 마틴과의 상업방식 계약에 따라 직도입,조립생산,면허생산으로 140여대를 들여왔다. 보유대수나 작전활용면에서 공군의 명실상부한 주력 전투기는 KF-16이다.

○임무컴퓨터부터 256K바이트급

30년 가까이 전투기를 사용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레이더및 항공전자장비,무장시스템을 제어하는 임무컴퓨터는 고물이나 다름없다. KF-16의 임무컴퓨터는 256K바이트급이다. 1980년대 이전 기술로 개발된 제품이다. 처리속도가 워낙 느려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다보면 일부 기능의 경우 메모리 및 중앙처리장치 사용율이 늘 99%를 웃돈다. 첨단 무기 운용은 고사하고 안전한 비행부터 장담할수 없는 지경이다.

비행기의 ‘눈’이라 할수 있는 레이더는 더욱 골치거리다. KF-16에 장착된 기계식레이더인 APG-68 V7은 주요 부품 37종중 36종의 생산이 이미 중단된 상태다. 기존 부품의 제고를 고려하면 내년부터 운영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F-16과 KF-16를 들여온이후 성능개량작업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던 공군과 함동참모본부,국방부,방위사업청의 책임이 크다. 공군은 2005년 3월과 2008년 10월 각각 F-16와 KF-16의 성능개량사업이 필요하다는 소요를 제기했다. 정작 F-16의 성능개량사업은 2009년부터 추진됐고 KF-16은 2010년부터 업체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2007년 248억원이었던 KF-16의 항전장비 운영유지비가 2008년에는 404억원,2009년에는 622억원으로 급증할 정도로 노후화에 따른 심각성이 드러났는데도 추진 속도는 너무 느렸다.
KF-16 컴퓨터는 1970년대급
○“싸면 비지떡”

공군은 KF-16의 메모리와 CPU 용량을 확대하고 기계식 레이더를 전자식으로 바꾸는등 성능개발을 맡을 외국 업체를 2010년부터 선정하는 작업에 나섰다. 방사청은 구매국의 요구사항에 따라 미 정부가 업체 선정과 가격,일정 등을 위임해 추진하는 일반적인 FMS 방식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먼저 업체를 골라 가격과 일정 등을 확정한뒤 미 정부에 합의한 사항을 반영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방사청은 2012년 가격과 성능을 분석,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BAE시스템스를 체계종합업체로,AESA 레이더 공급업체로는 레이시온을 선정,FMS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서산과 중원기지 등에 배치된 KF-16 130여대의 레이더와 컴퓨터,무장체계 등을 2020년대초까지 신형으로 바꾸는데 1조7500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같은 시기에 대만이 F-16 140여대의 성능개량에 30억달러대 후반을 주기로 하고 싱가폴도 60여대를 20억달러대 중반에 계약한 것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칭찬은 잠시였다. 지난 8월 사업수행에 따른 위험비 명목으로 미 정부와 BAE시스템스가 각각 5000억원과 3000억원의 추가비용을 요구하면서 사업 진행이 중단됐다. 종전보다 사업비가 47%가 증액됐기 때문이다. 총사업비 관리지침상 이전보다 20%이상 늘어나면 사업타당성 재조사를 한뒤 계속 추진여부가 결정된다. 조사기간 중에는 사업을 추진할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F-16를 전세계에 4000여대 이상 판매한 록히드 마틴 입장에서 각국의 성능개량소요가 급증하는 시점에 한국의 저가수주를 결코 용인할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돌발사태가 터진뒤 방사청은 첨단무기를 구매하면서도 눈 앞의 예산 절감을 위해 최저가 위주의 낙찰을 선호해온 결과 성능개량사업 일정만 늦추게 됐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내부에서도 반성이 제기됐다. 적정가격을 주고 제 때 구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싸면 비지떡이라는 사실을 획인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야당에선 “그간 FMS로 구매하면서 미리 업체는 선정했던 사례가 없었다”며 사업 수주 특혜의혹까지 제기했다. 공군 무기 도입을 관할하는 방사청 관계자와 BAE의 고문이 형제간이라는 점도 부각되면서 논란은 커졌다.

○관련자 책임 묻되 성능개량사업은 당장 추진해야

방사청은 BAE시스템스로부터 계약 불이행에 따라 계약금을 몰수하고 성능개량업체를 원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록히드 마틴과 협상을 벌이려면 적정한 예산을 갖고 있어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국방위는 KF-16 성능개량사업이 부실하게 진행됐고 부당한 영향력이 행사되었다고 판단, 방사청이 요구한 내년도 1000억원이상의 관련 예산을 대폭 깎으려고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제때 사업이 추진되지 못한데다 연기될 가능성도 적지않은만큼 정확한 조사를 통해 관련자의 직무유기 등 잘못이 드러난다면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감사원의 엄정한 감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KF-16 컴퓨터는 1970년대급
그렇다고 해서 성능개량사업 예산이 왕창 줄어들고 지지부진한 협상으로 항전장비의 개량이 더욱 늦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수년내 KF-16이 작전에 투입되지 못한채 지상 격납고에 대기하는 ‘참극’이 나타날수 있다. 공군 관계자는 “부품이 단종된뒤 수리에 수리를 거듭해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에서 다른 전투기를 빌려오거나 하이급 전투기를 추가구매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KF-16은 공군의 모든 작전에 활용되는 다목적 전투기이다. 현재 이를 대체할 전력은 찾기 힘들다. 더 늦기전에 성능개량사업을 마무리짓는 것이 급선무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