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벗어나면 미쳤다는 한국, 성장 정체에 빠질 수밖에…지금은 미친 선택 해야 할 때"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의 구본웅 대표(36·사진)에게는 항상 ‘LS가(家)의 장손’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외아들이다. 사업가 기질이 남달랐지만 LS계열사에 몸담기보다는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학부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을 때부터 힘들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벤처사업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포부를 키웠다고 한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최대 스타트업 축제인 ‘스타트업네이션 2014’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구 대표는 25일 기자와 만나 자신의 벤처 투자 철학과 원칙을 쏟아냈다. 포메이션8이 최근 1억500만달러를 투자한 옐로모바일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을 염두에 둔 듯했다.

옐로모바일은 2012년 창업 후 50여개 인터넷기업을 인수하며 급성장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을 현금이 아닌 옐로모바일 주식을 주고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일각에서 뚜렷한 비즈니스모델 없이 몸집을 키운 뒤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회수할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구 대표는 “옐로모바일의 (사업 확대) 시도는 확실히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며 “실리콘밸리에선 상식을 뛰어넘으면 혁신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미쳤다’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창조적 모험이 발붙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기디언 유 등 포메이션8 파트너들이 옐로모바일의 사업성을 높이 평가한 만큼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펀드(포메이션8) 출범 2년 만에 굵직한 투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투자 원칙을 지킨 덕분이라고 한다. 지난 3월 포메이션8은 오큘러스VR(가상현실 기기 업체) 지분을 페이스북에 매각해 투자금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는 오히려 오큘러스VR을 너무 빨리 팔아 10배밖에 수익을 못 남겼다고 안타까워했다. 포메이션8은 또 인맥관리 소프트웨어 업체인 리레이트IQ의 지분 매각으로 5배의 수익을 챙겼다.

구 대표는 벤처사업의 성공 비결로 네트워크를 꼽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야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메이션8이 1차 펀딩에서 4억8000만달러를 모을 수 있었던 것도 투자자들이 파트너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서다. 제리 양 야후 창업자와 피터 티엘 페이팔 창업자 등이 돈을 댔고 미국 중국 싱가포르 기관투자가들과 글로벌 헤지펀드 등이 참여했다.

요즘에는 두 번째 펀드의 막바지 모집을 하고 있다. 1차 때는 LS그룹(5000만달러)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전체 펀드의 20%를 투자했지만, 2차에선 1% 정도에 그쳤다. 미국 현지 투자자들도 포메이션8에 돈을 맡기고 싶어 줄을 섰다는 설명이다. 구 대표는 사업이 본궤도에 진입한 만큼 “유망한 한국 벤처를 키우기 위해 한국에만 투자하는 펀드를 별도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도 인코어드(자원 트레이딩 소프트웨어), 미미박스(화장품 큐레이팅) 등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망한 기업이 많다”며 “포메이션8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을 ‘글로벌급’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성장 정체에 빠진 한국 대기업들이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할지에 대해선 “기존 사업만으로 돌파구를 찾긴 쉽지 않다”며 “지금은 ‘미친 선택’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위기일수록 과감하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대에 세운 사업을 포기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래 사업을 찾는 절박한 노력 없이 위기 돌파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포메이션8

○설립: 2012년
○설립자: 구본웅 대표,기디언 유(전 페이스북최고재무책임자),짐 킴(GE 벤처그룹 창업자), 조 론스데일(페이팔 창업자) 등 6인

남윤선/박병종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