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연상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 이미지=잡코리아 제공,[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대학생들이 연상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 이미지=잡코리아 제공,[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국내 기업에서 ‘집중근무제도’를 도입한 곳을 찾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이는 근무시간 가운데 특정 시간대를 정해놓고 집중해서 일한다는 게 도입 취지로 설명되지요. 가령 A사의 경우 집중근무 시간대로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설정하고 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곰곰이 씹어보면 ‘약간 웃기다 (모순적이다)’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입니다. “일에 대한 집중도가 얼마나 낮기에 이럴까?”하는 의문을 부르는 까닭에서지요. 사실 하루 8시간 근무제라면 그 모든 시간 집중하는 게 맞은데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직장에서 구성원의 집중도가 낮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서 유행합니다. 우리 직장인 스스로 최대 불만요인으로 지적하는 야근을 하는 이유와 관련한 건데요. “낮 시간대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어 퇴근 시간이 지나야 겨우 가능하기 때문에 야근을 한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와 함께 직장에서 높은 사람의 의사결정을 마냥 기다리며 일손을 놓고 있는 풍경이나 회의실이 비길 기다리며 여러 사람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목격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은 그림으로 꼽힙니다. 이는 LG경제연구원 강승훈 책임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한국기업, ‘영혼 있는’ 몰입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짧게 언급한 것을 돋보기를 들이대 각각 확대해 본 것입니다.

보고서 제목에 맞추어 국내 기업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은 이른바 ‘영혼 없는 몰입’인 셈입니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특정 출연자의 말 또는 행동에 주변인들이 감정이나 표정을 싣지 않고 반응할 경우 자막으로 ‘영혼 없는 리액션’이라고 표현하지요.]

강승훈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국 기업 구성원들의 일에 대한 몰입 [영어로 Engagement] 수준은 처참한 상황입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컨설팅 회사인 타워스 왓슨의 2012년 ‘글로벌 인적자원 설문 조사 Global Workforce Study’에 따르면 한국 기업 구성원 중 ‘몰입 수준이 높은 highly engaged’ 구성원은 전체의 17%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말로 열 명 중 여덟 명은 일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모두 바삐 일하는 것 같지만 실제 몰입해 일하는 구성원은 드물다는 뜻입니다. 국제적으로 비교를 하면 문제가 더 커 보입니다. 17%란 비중은 글로벌 기업의 평균치인 3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강승훈 책임연구원은 국내 기업 구성원들의 영혼 없는 몰입의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안정성의 위기=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장기고용이 주를 이루던 기업과 구성원 간 관계가 유연성 중심으로 변화했다. ‘조직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면 평생이 보장 된다’는 과거의 암묵적 계약이 유효성을 잃으면서 구성원들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안정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과거 우량기업이 경쟁 속에서 도태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안정된 직장이라는 개념 자체도 흔들렸다.

●의미의 위기= 업무의 분화가 심화하고 조직의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구성원들이 일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성취감 같은 고차원적인 의미를 찾기 전에 일의 이유조차 납득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더욱이 아직도 남아 있는 위계적 조직운영 관행에서 비롯된 ‘하라면 하는 거야’라는 식의 리더십이 구성원 몰입을 더욱 저하시키고 있다.

●활력의 위기=이펙토리 인터내셔널사가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에너지 정도를 측정한 ‘구성원 활력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활력도는 조사 대상 52개국 중 51위로 바닥권이다. 우리 기업 구성원들이 몰입에 필요한 활력을 갖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아직도 많은 기업과 구성원들은 ‘오래 일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투입량 중시 사고에 젖어 있다. 이는 새로운 일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워지자 오래, 그리고 많이 일함으로써 저조한 성과를 무마하려는 방어적인 생각에서 비롯한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여러 통계 자료는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방증이다.

강승훈 책임연구원은 기업 구성원의 영혼 없는 몰입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시를 통해 그 댓가를 설명합니다. “갤럽Gallup은 몰입도가 낮은 구성원으로 인한 비용이 미국에서만 매년 4500억 달러에서 55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조사를 내놓았다.”

그는 무엇보다 ‘영혼 없이 일하는 구성원으로 가득 찬 조직은 미래가 없다’고 설파합니다. 영혼 없이 자리만 지키는 구성원들에게서 자발성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란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기업 구성원에게 영혼 있는 몰입을 유도할 방법은 무엇일까?

강승훈 책임연구원은 복지향상 처우개선을 통한 이른바 ‘신의 직장’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구성원의 몰입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도전적인 일과 참여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페이스북 사례’가 좋은 대안으로 여겨집니다.

“페이스북은 창업자 지커버그를 중심으로 ‘해커 hacker 정신’을 표방하며 6~8주 주기로 ‘해커톤’ [hackathon= hacker+marathon] 행사를 열고 있다.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팀을 구성하고 해커톤이 벌어지는 그 날 밤을 꼬박 새워 일하면서 아이디어의 실행 방안을 만든다.

밤 새워 일하는 것은 힘들고 시간 제약도 있지만 자신이 구상한 내용을 현실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 호응이 매우 높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타임라인, 채팅 등 주요 기능이 이 해커톤을 통해 비롯되었을 정도로 이 행사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해커톤은 자발적으로 기획한 아이디어를 구현해보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구성원의 의식 속에 도전정신과 자발성을 자연스레 배양하는 도구이자 해커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강승훈 책임연구원]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