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TV홈쇼핑을 공기업으로?
서울 목동 요지에 행복한백화점이란 곳이 있다. 1999년 문을 연 중소기업제품 전용 백화점이다. 중기 제품 판로개척 지원을 위해 공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전액 출자해 만들었다. 이 백화점은 지난해 6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3년 551억원 매출에서 10년간 15%밖에 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32%)을 감안하면 성장이 뒷걸음질한 것이다.

반면 한 블록 건너에 있는 현대백화점 목동점. 2002년 개점한 이곳의 작년 매출은 7800억원이었다. 2003년 매출 3900억원에 비해 두 배로 뛰었다. 비슷한 곳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현대백화점이 10년간 100% 성장하는 동안 행복한백화점이 15%밖에 못 큰 이유는 뭘까. 중기 제품 위주로 팔기 때문이란 변명만으론 이 큰 격차를 설명하기 어렵다.

주인 없는 행복한百의 실패

근본 이유는 민간기업과 공기업의 차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은 영등포의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은 물론 전국 다른 현대백화점 매장과 치열한 실적 경쟁을 한다. 하지만 행복한백화점은 경쟁상대가 없다. 열심히 팔 이유가 없고, 실적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행복한백화점은 최근 임직원의 뇌물수수와 횡령으로 비리 백화점이란 오명까지 쓰고 있다.

주인 없는 공기업의 폐해가 이런 데도 정부가 제2의 행복한백화점을 추진 중이다. 제7 TV홈쇼핑이다. TV홈쇼핑 채널이 6개나 되지만 중소기업 제품과 농축수산물 판로 지원을 위해 채널을 또 하나 인가해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100% 공기업으로. 기존 홈쇼핑 채널의 판매수수료율이 30%로 높아 영세 중소기업은 엄두를 못 내니 수수료를 20%만 받는 공영 홈쇼핑을 만들겠단다. 취지는 선(善)해 보이지만 실패 또한 뚜렷해 보인다.

우선 전용 홈쇼핑이 생긴다고 모든 중기제품이 잘 팔리는 건 아니다. 기존 6개 홈쇼핑도 중기제품 편성비율이 지난해 기준 63%다. 중기 전용 홈쇼핑인 홈앤쇼핑은 이 비율이 81%다. 이미 팔릴 만한 중기제품은 기존 홈쇼핑 채널에서도 갖다 팔고 있다. 이들이 취급하지 않는다는 건 소비자 선택을 못 받았다는 얘기다.

홈쇼핑 공영방침 재고해야

또 제7홈쇼핑은 수익이 나면 전액 재투자하도록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아예 돈 벌 생각은 않겠다는 것이다. 이익을 낼 유인이 없는데도 이 홈쇼핑은 과연 효율적으로 경영될까. 적자를 낼 게 뻔하다.

시장에 개입하려는 관료들의 명분은 늘 정의롭다. 비싼 휘발유값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남들보다 비싸게 사는 호갱(호구 고객)을 구하기 위해,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 지원을 위해…. 이런 명분이 알뜰주유소,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행복한백화점을 만들었다. 결과는 아시는 바와 같다.

더 중요한 건 시장에 개입하는 관료들의 공익적 명분 뒤엔 사익(私益)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 교수는 공공선택이론에서 ‘관료들은 정책을 만들 때 퇴직 후 갈 자리를 늘리거나, 규제를 만들어 영향력을 늘리려는 경향이 있다’고 갈파했다.

행복한세상의 역대 대표이사 대부분이 관료나 중진공 출신 낙하산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제7홈쇼핑도 관료들이 퇴직 후 자리를 만들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면 공기업 방침을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한다.

차병석 IT과학부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