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걸림돌' 증손회사 규제 푼다
새누리당은 24일 당정협의를 하고 지주회사가 손자회사를 통해 증손회사를 보유할 때 지분 100%를 확보하도록 한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증손회사 지분 규제 완화는 4년 만에 다시 논의되는 것으로, 이 규제에 발이 묶여 대기업이 신규 사업 발굴 및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태 의원은 “증손회사와 관련한 지분 규제를 푸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둘 경우 반드시 100%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두산 CJ SK 등 주요 그룹은 신규 사업을 위해 증손회사를 세우거나 인수했다가 이 규정에 걸려 재매각하거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지분 요건을 낮춰야 합작이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기업이 신사업에 적극 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관련 지분 규제는 기업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줄곧 개선을 요구해온 조항이다. 이 규제에 걸려 지주사들은 신사업을 타진하기 위해 설립한 증손회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매각하거나 과징금을 내야 했다.

두산그룹은 2009년 1월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두산건설 계열의 증손회사 네오트랜스(신분당선 운영회사)가 문제가 됐다. 보유지분 42.86%를 100%로 끌어올리거나 매각해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012년 12월까지 4년간 처리시한을 유예받았지만 다른 주주들의 반대로 아직도 위반 요건을 해소하지 못했다. 두산캐피탈도 같은 규제를 해소하지 못해 과징금을 받았다. 두산그룹이 이 규제 때문에 작년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만 56억원에 달한다.

CJ도 마찬가지다. 2011년 지주사 CJ(주)의 손자회사인 넷마블게임즈가 증손회사 4곳의 지분 100% 확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공정위로부터 4억6200만원의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SK그룹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알짜 계열사를 매각했다. 작년 7월 손자회사인 SK플래닛이 증손회사에 해당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를 해외 사모펀드에 팔았다. 또 SK플래닛이 증손회사인 SK컴즈 지분 64.5%를 확보하고 있는데, 역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상태다. SK플래닛은 SK컴즈 지분 35.5%를 추가 인수하거나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데 SK컴즈가 상장사여서 100% 지분 인수도 불가능하다.

SK 측은 임시방편으로 공정위에 2015년 9월까지 4년간 SK컴즈 지분 처리를 유예받았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대기업 관계자는 “한때 지주사를 선진형 지배구조라고 했던 정부가 지금은 지주사에 대해 더 과도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에도 없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여당과 정부가 24일 당정협의에서 지주사의 증손회사 지분 확보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또는 상장 증손회사 20%, 비상장 증손회사 40% 정도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야당 반발이 변수다. 야당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증손회사 지분 규제를 풀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0년에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보유를 허용하되 지분 확보 요건을 상장사는 20%, 비상장사는 40%로 낮추자’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듬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야당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태명/은정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