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카드 꺼낸 중국] 선전포고 없는 '통화전쟁'
“중국과 일본 간 전면적인 통화전쟁이 임박했다.”

지난달 말 일본은행의 예상치 못한 양적 완화 확대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덴마크 투자은행 삭소뱅크의 스틴 야콥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0일 “중국이 위안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21일 중국은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미국의 금융정보업체 다우존스는 22일 “중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하강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본과 유럽의 양적 완화에 대응해 위안화 절상을 막으려는 의도 또한 있다”고 분석했다. 한 외환전문가는 일본의 양적 완화 확대와 중국의 금리인하가 시장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발표된 점을 들어 “선전포고 없는 통화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일본의 양적 완화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며 경쟁적인 통화가치 인하 가능성을 지적했다. 2012년 9월 이후 엔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33.5%, 유로화 대비 33.2%나 폭락하면서 주변국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수출경쟁 민감도가 높은 한국 원화에 비해서는 엔화가 35.0%나 떨어졌다며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제기했다.

엔캐리 트레이딩(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 자금의 타깃이 되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 정부도 최근 엔저 때문에 자국 내 자산과 통화가치가 펀더멘털 이상으로 고평가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유럽은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중국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응해 국채 매입을 포함한 전면적인 양적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환율방어를 위한 구두개입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동안 기준금리 조기인상설이 유력했던 영국중앙은행(BOE)은 이 카드를 거둬들이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최근 보고서에서 BOE가 기준금리 인상을 내년 1분기에서 3분기로 연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통화전쟁을 촉발한 일본의 엔화약세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 21일 “엔화 약세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지만 내달 조기 총선을 의식한 제스처일 뿐 엔저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설문조사에 따르면 JP모간은 내년 3월 말 달러당 120~121엔, 미즈호은행은 120엔 전후로 엔화 가치를 예상하고 있다.

뉴욕=이심기/도쿄=서정환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