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실질적으로 거래해 온 차명계좌의 실소유주가 예금된 돈을 인출했다면 계좌 명의자가 이의를 제기해도 은행이 이를 변상할 의무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오는 29일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개정 금융실명제법 시행을 앞두고 차명계좌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홍이표)는 23일 이모씨가 A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채권 반환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A은행에는 이씨 이름으로 된 계좌가 8개 있었다. 이씨는 자신의 부친이 이들 계좌에서 1억5500만원을 찾아가자 명의자는 자신인데 은행이 허락 없이 부친에게 돈을 인출해줬다며 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은행 측은 해당 계좌에 실제로 돈을 입금하고, 비밀번호와 도장 등을 관리해온 것은 이씨의 부친이므로 실소유주를 부친으로 볼 수 있다며 맞섰다. 실제로 A은행에 이씨의 주민등록증 사본 등 서류를 제시하고 이씨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것은 이씨의 부친이었다.

재판부는 이씨 부친이 민법에서 정한 채권을 행사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 준점유자에 해당하므로 은행이 돈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