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풍경소리 들리는 크레도르 시계…1년에 3개만 생산, 가격도 3억원대
세이코의 또 다른 시계 생산기지인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鹽尻)시의 세이코엡손 공장. 저렴한 쿼츠(전자식) 시계부터 고급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계를 생산하는 이 공장의 한 쪽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비밀 공간이 있다. 최고급 예술 시계를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있는 ‘마이크로 아티스트 스튜디오’다.

2000년 문을 연 이곳은 세이코가 ‘월드클래스 워치메이킹’(세계 정상급 시계 제조)의 산실로 삼는 곳이다. 세계기능올림픽 수상자를 비롯해 시계 제조 분야의 최고 전문가 11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신제품 개발 외에도 최고급 제품의 디자인, 조립, 마감 처리 등 모든 제조 과정을 직접 처리하고 있다.

세이코 시계 장인들의 작품에는 유럽 시계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깃들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명품 시계 기능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종소리를 울려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라는 게 있다. ‘크레도르 스프링드라이버 미닛 리피터’는 미닛 리피터 기능을 작동시키면 풍경(風磬) 소리가 울려퍼진다. 풍경은 일본의 고택이나 산사에서 지붕 처마 끝에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 부딪히며 영롱한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를 시계에 옮겨놓은 것이다. 1년에 세 개밖에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제조 공정이 까다롭다고 한다. 가격도 3300만엔(약 3억1100만원)에 달한다.

놋그릇을 두드릴 때 나는 은은하고 담백한 소리를 내는 시계도 있다. ‘크레도르 스프링드라이브 소네리에’라는 이 제품 역시 1500만엔(약 1억4100만원)의 높은 가격표가 붙어 있다.

‘크레도르 스프링드라이브 에이치 투(EichiⅡ)’는 언뜻 보면 마치 기념시계처럼 밋밋해 보이지만 개당 가격이 550만엔(약 5100만원)에 이르는 고가 제품이다. 새하얀 다이얼(시계판)은 도자기로 만든 것으로, 공장이 있는 신주 지역의 눈 덮인 겨울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푸른 핸즈(시곗바늘)에는 금속에 열을 가해 색상을 변형시키는 가공법을 썼고, 로고와 시간 표시는 사람이 붓으로 일일이 그려넣은 것이다. 이들 제품에는 세이코가 독자 개발한 스프링드라이브 기술이 적용돼 있다. 기계식으로 작동하지만 오차는 전자식으로 보정하도록 해 스위스 명품 브랜드의 기계식 시계보다 시간의 정확성이 더욱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오지리=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