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국제형사재판소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르완다 내전으로 110만여명이 살해됐다. 하루에 1만여명씩 살해됐다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발칸의 화약고’에서도 제노사이드(종족말살)의 피바람이 불었다. 보스니아의 한 마을에서만 8000여명이 학살됐다. 이 같은 만행이 이어지자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심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결과 로마회의가 1998년 개최됐고, 120개국의 지지 속에 2002년 7월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치됐다. 그 전에도 독일 뉘른베르크와 일본 도쿄 등에서 2차대전에 대한 국제 전범재판이 있었다. 그러나 한시적인 법정이었다. 상시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흔히들 이름이 비슷한 국제사법재판소(ICJ·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와 혼동하기도 한다. 둘 다 헤이그에 있지만 사법재판소는 국가 간 분쟁 시 당사국 합의 하에 이뤄지는 유엔의 자체 법원이다. 이와 달리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다루는 국제법정이다. 유엔 산하 기구가 아니어서 ‘시어머니’도 적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은 18명이고, 전체 직원을 다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2002년 출범 때부터 동참했다. 송상현 서울대 교수가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돼 2006년 연임을 거쳐 2009년 재판소장이 됐고, 2012년 재선돼 지금까지 수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조사했거나 조사 중인 범죄는 9건, 사전검토 중인 것이 9건이다. 2007년에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공판을 시작했고, 수단의 다르푸르 안건에 대해 현직 각료 등 2명에게 처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2년 3월에는 첫 유죄 판결을 내려 콩고민주공화국의 반군 지도자에게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그해 4월에는 국가 수반 출신에 대한 첫 유죄 판결로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에게 징역 50년을 선고했다.

엊그제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권하면서 북한 ‘최고위층’을 인권침해의 최종 책임자로 명시했다. 그냥 인권 개선을 촉구한 과거와 달리 김정은을 지명해 재판에 회부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안보리 공식 안건으로 채택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압박은 더 거세질 게 분명하다. 북한도 연일 핵실험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걸 보니 꽤나 다급해진 모양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