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칼럼] 포털을 누른 '왓챠'의 메시지
석유의 역사는 현대 문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 지하 21m에 유정(油井)을 뚫는 데 성공했다. 이 기름은 고래기름을 대체해 세상을 밝힐 것이라는 드레이크의 소박한 기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산업시대를 열었다. 펜실베이니아에는 원유 수출을 위한 철도가 깔렸고, 수출항인 피츠버그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1912년에는 현대식 증류법이 개발돼 가솔린, 등유, 경유 등이 분별 증류됐다. 1년 후에는 가솔린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고 차례로 플라스틱, 섬유, 고무, 페인트, 세제 등 원유를 이용한 문명의 이기들이 발명됐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고 있지만 석유는 아직 한 번도 왕좌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독보적인 전방위 에너지원인 셈이다.

21세기, 새로운 원유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웹 상의 자료다. 지구 곳곳의 정보가 몇천 년씩 땅속에 묻혀 있던 동물 잔해를 대신해 원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를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빅데이터에 집중하는 이유다.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접근, 자료 저장 및 분석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자료저장을 위한 대용량 메모리는 원유 채굴기 역할을, 데이터 분석은 증류 기술 역할을 한다. 요즘 빅데이터 채굴기의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낮아지면서 빅데이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방식은 용량이 크지 않고 전력 소비량이 높았지만 반도체 미세공정 진화로 개발된 낸드플래시 기반의 대용량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는 전력사용량과 부피가 줄어들고, 처리 속도도 월등히 높아졌다. 요즘은 기가바이트(GB)당 600원을 밑도는 저장장치가 나왔을 만큼 저장장치의 가격이 내려갔다.

낸드플래시가 스마트폰이나 PC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대용량 스토리지 시스템에 보급되면서 빅데이터 채굴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채굴기가 나타나면서 기업들이 각각의 증류 기술, 즉 각각의 알고리즘 및 검색엔진, 솔루션을 개발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신사업에 먼저 다가간 것은 중소기업, 스타트업이다.

국내에서도 빅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에게 개인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로그램스이다. 프로그램스의 영화 추천 애플리케이션 ‘왓챠’는 포털 서비스보다 22배의 영화 평가 별점을 획득해 공룡으로 변한 포털사이트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영화 추천 1등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기업의 크기와 상관없이 1등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증거다. 프로그램스 같은 스타트업이 많아지면 생태계 역시 풍요로워질 전망이다. 창조경제를 위해 낸드플래시 업계는 더욱 크고 저렴한 대용량 메모리를, 스타트업들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다행히 두 분야는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채굴기와 증류기술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원유가 발견된 지 15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관련 특허가 등록되고 있다. 요즘 정유업계는 고급 윤활기유 개발에 한창이라고 한다. 온도에 따른 점도변화가 적은 고급윤활기유 개발과정을 ICT 분야에 대입한다면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해외에서 통용될 수 있는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데이터 마이닝, 이미지 검색 엔진 등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나오길 바란다.

김태섭 < 바른전자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