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햄릿증후군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랜 시간 회의를 거듭한 뒤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6~8시간이나 걸리는 때도 있다. 창업자 빌 게이츠가 얼마나 심사숙고하는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앉아서 생각하라고 월급 준다”는 말까지 했다. 워런 버핏도 자신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기업, 20년 뒤의 흐름까지 보이는 기업이어야 확신을 갖고 투자한다. 전형적인 햄릿형이다.

GE의 잭 웰치와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등은 어떤가. 신호가 켜지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긴다. 1970년대 말 GE가 5000만달러를 들여 수명이 10배 긴 전구를 개발하다가 실패했던 때, 잭 웰치는 프로젝트팀을 칭찬하며 몇몇을 승진까지 시켰다. 과감하게 모험을 하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다. 말하자면 돈키호테형이다.

인간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나눈 것은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다. 약 400년 전인 1616년 4월23일,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작품 속 캐릭터가 어쩌면 이렇게 대조적일까. 알다시피 햄릿형은 사색과 회의에 몰두하는 우유부단형,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돌진형이다. 물론 우리는 이 극단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그런데 주도적인 선택을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보 과잉 시대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헤매는 햄릿족이 내년 소비 트렌드의 첫 번째 키워드로 꼽혔다. 정보 과잉이란 곧 선택 과잉을 뜻한다. 이것도 괜찮은 듯한데 아닌 것 같고, 저 사람도 좋은 듯한데 아닌 것 같아 결국 선택을 못한다는 얘기다. 어디서나 ‘아마도, 어쩌면…’을 연발하는 ‘메이비(maybe) 세대’,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모든 결정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마마보이, 식당 메뉴에서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글쎄요족 등이 다 같은 범주다.

독일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가 말한 ‘결정장애세대’는 소비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선택과 비선택 사이의 회색지대를 배회하는 소비자가 많을수록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그렇지 않아도 제조업이 위축되고 도전의식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높다. 지금이야말로 햄릿증후군 대신 키호티즘(Quixotism·돈키호테적 태도)을 얘기할 때다. 실패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가는 돈키호테의 정신 말이다. 모험하는 사람이 큰일도 한다. 옛사람들도 훌륭한 뱃사람은 거친 바다가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