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E는 끝났다’ > 미국 중앙은행(Fed)이 29일(현지시간) 양적 완화 를 종료한다고 발표한 직후  뉴욕증권거래소(NYSE) 직원들이 시황을 살펴보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 ‘QE는 끝났다’ > 미국 중앙은행(Fed)이 29일(현지시간) 양적 완화 를 종료한다고 발표한 직후 뉴욕증권거래소(NYSE) 직원들이 시황을 살펴보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고통 없는 통화정책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29일(현지시간) 오전 뉴욕의 외교위원회가 주최한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양적 완화 종료 결정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Fed가 양적 완화를 끝내기로 한 것은 미국 경제 회복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6년 만의 통화정책 정상화는 ‘넘치는 달러’에 익숙해져 있던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신흥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신흥시장이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4조달러 살려낸 미국 경기

양적 완화는 2008년 11월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경기 회복을 위해 꺼내든 특단의 카드였다. ‘비(非)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불리는 양적 완화는 ‘무제한 달러 살포’의 다른 이름이다. 중앙은행이 제로금리 상황에서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등을 사들여 시중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 경기를 살리기 위한 조치다.

전대미문의 양적 완화는 3차까지 이어지며 6년간 약 4조달러가 전 세계에 풀렸다. Fed는 2009년 3월부터 1년간 1조7500억달러를 1차로 투입했고, 2010년 11월부터 7개월간 6000억달러를 추가로 풀었다. ‘약발’이 먹히지 않자 Fed는 무제한 달러 공급을 선언하고 2012년 9월부터 무려 1조60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美 3차 양적완화 종료] 6년만에 끝난 '4조弗 실험'…美 살렸지만 세계경제는 '안갯속'으로
결과는 일단 성공적이다. Fed가 정책 목표로 내걸었던 실업률은 이 기간 중 최고를 기록했던 2009년 10월 9.6%에서 지난달 5.9%로 떨어졌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지난 2분기에 연율 기준 4.6%의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차 양적 완화를 시작할 당시 800에도 못 미쳤던 S&P500지수는 2000선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증권사인 찰스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수석전략가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양적 완화를 영화 ‘펄프 픽션’에서 주인공이 마약 중독으로 죽어가던 여자 친구를 해독주사로 살려낸 것에 비유하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하산(下山)’이 문제다. 언젠가 Fed가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매각해 시중에 풀린 약 4조달러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2개월 연속 1.7%에 그치면서 Fed 목표치인 2%를 밑돌았다.

○안전장치 사라진 국제금융시장

미국의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이날 양적 완화 종료가 불확실성과 변동성의 문을 열었다며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망이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날 뉴욕 증시는 다우와 S&P500, 나스닥 3대 지수 모두 하락세를 보였으며, 6개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장중 86.041로 급등해 3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국채 금리는 FOMC 발표 후 10년물이 6bp(1bp=0.01%포인트)나 뛰어오르기도 했다.

양적 완화로 인해 신흥국에 풀린 돈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달러 강세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도 신흥국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이 ‘나홀로 성장’을 하면서 다른 선진국들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뒤늦게 ‘양적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0일부터 커버드본드(금융회사가 보유한 우량 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 흐름을 유동화한 채권) 매입을 통해 금융회사에 유동성 공급을 시작했다. 매입 규모는 지난주에만 17억유로(약 2조2700억원)에 달했다. 일본도 소비세 인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도 시중은행들에 단기 유동성 지원을 하고 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김순신 기자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