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투리 경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조각보(褓)를 몬드리안의 그림과 빗대기도 하고 백남준 미학의 뿌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국 문화의 원형을 조각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색깔이나 형태별로 모은 자투리 천을 수놓아 보자기나 밥상 덮개로 재탄생시킨 것이 조각보다. 한국 규방(閨房)문화의 아이콘이면서 생활의 지혜까지 담고 있는 유산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이를 복(福)을 싸둔다고 해서 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충분히 그럴 법하다.

옷감 자투리는 조선시대 현금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나룻배를 타고 뱃삯이 없으면 베 조각 자투리를 내놓아도 통용됐다. 주막에서 밥이나 술을 먹을 때도 자투리가 이용됐다. 지금도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자투리를 찾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투리가 엉뚱하게 쓰인 곳도 있었다. 도량형 통일이 안 되고 명확하게 잴 기구가 없던 시절에는 한 치나 두 치씩 속여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푸줏간이나 쌀가게가 특히 심했다. 이들 상인은 아예 자투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현대 경제학에서 자투리는 범위의 경제를 설명할 때 쓰이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한 제품의 자투리를 다른 상품의 생산에 활용해 이득이 생기는 경우 이를 흔히 범위의 경제가 있다고 말한다. 범위의 경제를 누리는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유통이나 서비스 분야에서도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아이디어 상품 또한 쉽게 내놓을 수 있다.

자투리 목재를 활용해 예쁘게 디자인한 고급 의자나 액세서리 수제품을 만들고, 가방이나 구두 등을 만든 뒤 남은 가죽 자투리로 신발을 만드는 것 모두 이런 범위의 경제를 이용한 경우다. 오징어 가공 공장에서 버려진 오징어 입을 모아 맥주 안주로 만든 기업체 사장의 아이디어도 자투리를 잘 활용한 사례다.

물론 상품 자투리만이 아니다. 공간 자투리의 쓰임새도 늘고 있다. 특히 일본인들이 이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소파 아래에 수납공간을 만들고 접이식 침대를 생각해낸 것은 일본인이다. 냉장고 안의 공간도 그냥 놔두지 않고 다용도로 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ha(2만㎡) 이하의 자투리 농지를 일반농지로 전용해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절대농지 해제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지자체들은 자투리땅을 시민 휴식공간이나 각종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자투리 농지의 대변신이 기대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