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017년 9월부터 버뮤다 케이맨제도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 지역을 포함한 세계 51개국에 있는 자국인의 은행계좌 정보를 각국 과세당국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재산은닉과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해외 은행에 계좌를 만들어온 관행이 철퇴를 맞게 됐다.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공조체제도 가동할 예정이다.

○부자들의 역외 탈세 봉쇄

해외 재산은닉·조세회피 관행 철퇴 맞는다
3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한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등을 포함해 51개국 재무장관과 세무당국 관계자들은 29일 베를린에서 ‘다자간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에 서명했다. 이들 국가는 협정이 발효되는 2017년 9월부터 상대방 국가의 은행을 이용하는 자국 고객 계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대상이 되는 계좌는 법인의 기존 계좌의 경우 예금 25만달러 이상이며, 개인의 모든 계좌와 법인 신규 계좌는 금액과 관계없이 모두 정보교환 대상이 된다. 또 계좌 보유자의 이름과 주소, 계좌잔액, 계좌에 지급되는 이자 배당 등 과세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제공된다.

이번 협정에는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버뮤다 등 조세회피지역으로 알려진 나라도 참여했다. 미국은 이번 협정에는 서명하지 않았지만 2010년 제정된 해외계좌세금신고법(FACTA)에 따라 외국과 은행계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울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앞으로 세금 회피가 어려워지고 옛 시대의 은행비밀주의도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역외탈세가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OECD는 25개국에서 지난 5년간 자발적 세금신고 프로그램과 세금회피 단속 강화 등을 통해 470억달러(약 49조5000억원)를 거둬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 국가 빠져 반쪽 협정 우려

그러나 이번 협정에 상당수 국가가 참여하지 않아 자칫 반쪽 협정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스위스 브라질 캐나다 중국 홍콩 일본 등은 참여 시기를 2018년 이후로 늦췄다. 이번 협정에 서명한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등도 시행시기를 2018년 9월로 하겠다고 밝혔다. 빨라야 2017년 9월 정보교환이 이뤄져 조세를 회피하려는 계좌 개설자가 재산을 분산, 은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는 비판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스위스가 자국 내 절차 때문에 가입을 늦췄지만 각국 재무장관은 참여를 낙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5월 미국 부자들의 탈세를 도운 혐의로 크레디트스위스에 26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뒤 이미 100여개가 넘는 스위스은행이 미국의 기소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협조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편 G20과 OECD 국가들은 이와 별도로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에 맞서기 위한 정보교환도 추진할 예정이다. 다국적 기업은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의 해외법인에 이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해 왔다. OECD는 구글 애플 야후 등 다국적 기업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2조달러 이상의 이익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