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市場의 구조조정 과정 방해하지 마라
정부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가지 정책을 펴는데도 사람들은 삶이 고단하다고 한다. 또 주요 각국의 중앙은행이 앞다퉈 돈을 풀고 있지만 세계 경제는 도무지 회복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인간 이성으로써 현대와 같은 거대 경제를 계획하거나 설계할 수 없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이다. 인류는 20세기 말 설계주의의 극단인 사회주의 몰락을 목격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대규모 경제가 인위적 조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경제 질서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경제 질서란 남의 재산을 넘보지 않고 자발적 계약을 이행하는 등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행동 규칙을 지킬 때 생기는 질서 안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경제를 일컫는다. 그런데 정부 개입이 심해질수록 그런 질서는 왜곡되고 파괴된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정부의 강박감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작금의 정부 정책은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국회에 민생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아우성이지만 지금까지 막혔던 시장의 움직임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한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경제민주화 정책도 그렇다. 동반성장은 경제 주체 간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분업과 교환 구조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이 경제도 모든 것이 음으로 양으로 알게 모르게 상호 연결돼 있어 특정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은 의도한 결과는커녕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를 낳기 일쑤다. 정책이나 법률이 특수한 목적을 지향하는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질서는 복잡다단한 현상의 규칙성을 연역적으로 추론해 발견할 수 있을 뿐, 그 구체적 연결 고리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복지 정책을 생각하면 한국 경제에 대한 걱정은 상상하기도 싫은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정부 예산의 30%를 넘나드는 비중도 문제지만 사용처가 더 심각하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여야 그나마 나라 전체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데, 한국의 복지 정책은 어느덧 ‘무상(無償)’으로 표현되는 보편적 복지의 길로 들어섰다. 예산 비중의 확대는 이와 같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주된 원인이다. 지금과 같이 복지에 자원을 쏟아부으면 저축과 혁신 유인이 사라져 자본 축적이 정체되며 종국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우리 모두의 삶을 궁핍하게 만든다. 정부 의존적인 건강하지 못한 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한편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돈을 풀고 있지만 세계 경제는 좀처럼 회복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있다. 불황은 경제가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으니 이를 고치라는 시장 신호다. 지금의 불황은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어 생긴 경제의 뒤틀림을 시장 과정에 의해 구조조정하라는 신호다. 그런데 돈을 풀어 생긴 문제를 다시 돈을 풀어 해결하려고 하니 ‘돈 쓰레기’만 쌓이고 불황의 골이 길어지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도 미국의 후버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불황 탈출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정책으로 개입해 시장의 조정 과정을 방해해서 길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도 저금리 정책과 함께 넘쳐나는 ‘돈 쓰레기’의 결과는 전세난과 가계부채 급증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작금의 한국과 세계 경제의 긴 불황은 인간 이성으로 거대 사회를 조정할 수 있다는 무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인간 이성은 본디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지의 실상이며, 그런 무지로 인해 민생은 고단한 것이다. 정부가 거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은 없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재정비하는 시장의 구조조정 과정을 방해하지 않아야 경제는 회복의 길로 들어선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