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 마음 읽는 '심리 부검'…자살 막을까
직장에서 과도한 실적 압박을 받던 50대 직장인 A씨. 그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2012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상실감에 시달리던 A씨의 어머니(70대)와 아내(40대)도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그의 길을 따랐다. 2년 동안 가족 세 명이 세상을 뜬 것이다.

김준희 부산정신건강증진센터 위기개입팀장은 “이같이 비극적인 케이스가 적지 않다”며 “가족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그 주변인들도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내년 초 발표할 자살예방종합대책에 ‘심리적 부검 체계’를 활용한 자살자 유가족 관리 방안을 포함할 계획이다.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자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주변인들의 심층 면접을 통해 밝혀내는 것. 심리적 부검 자료는 정부의 자살예방 정책이나 자살 전 징후 정보 확보 등에 활용된다.

이중규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유가족들은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경우가 많은 만큼 심리 부검 체계를 활용한 유가족의 정신건강 관리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인 정부의 심리 부검 사업에 유가족 상담 및 사후관리 서비스를 포함해 1석2조의 효과를 얻겠다는 얘기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률은 지난해 2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 중 상당수가 자살 유가족들이다.

관건은 정부의 심리 부검 사업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다. 복지부는 2009년에도 심리 부검 사업을 시행했지만 유가족 사례를 많이 찾지 못해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경기지방경찰청과의 협조를 통해 겨우 사례 70건을 모았지만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현수 경기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사고 후 유가족을 1차적으로 접하는 경찰들의 협조가 가장 중요한데 지난해보다 올해 협조가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복지부는 자살예방법 시행령에 심리 부검 항목을 신설하거나 경찰청과 논의해 경찰 복무 지침에 심리 부검 협조를 명시화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 협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선 유가족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살사건 전담 경찰관직을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경찰 입장에선 이 같은 협조 요구가 달갑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 형사과 형사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범인 잡기에도 바쁜 상황에서 현실적이지 못한 얘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핀란드에선 1987년 모든 자살사고에 대해 심리 부검을 실시, 6년 만에 자살률을 20%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대대적인 심리 부검으로 예방정책을 펼치고 유가족 정신건강관리에도 힘쓴 덕이다.

하지만 가족의 자살을 밝히기 꺼리는 한국 문화상 심리 부검 사업이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학과 교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가족에게 데이터 수집 목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인권 침해 요소도 있을뿐더러 유가족에게 더욱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