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기업가 정신, 멀리 있지 않다
지난여름 어느 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회사를 경영하는 중소기업인 A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공장을 찾았다. 제품 설명을 들은 후 질문을 했다. “작은 조명회사에서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LED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답했다. “척 보면 알아요. 사업이 될지 안될지.” LED가 돈이 된다고 보고 남들보다 빨리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무언가 말을 더하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기자들 표현으로 ‘기사가 되는 답’을 얻기 위해 몇 차례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 하지만 A씨는 “우리는 진짜 한 번 보면 안다니까요”란 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경험이 가져다준 직관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출성형 기계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을 일군 B회장을 만나기 위해 충북 보은까지 갔다. 작은 철공소에서 시작해 66만㎡짜리 공장의 주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성공비결을 묻자 “남보다 일 좀 더한 거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계속 질문을 해도 답은 비슷했다. “평생 일만 생각했어요.”

두 번 모두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머리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이 양반들…. 기사는 어떻게 쓰지.” 갑갑했다. 물론 그 순간에도 기자의 뇌는 생존을 위해 답을 찾고 있었다. “척 보면 안다” “일만 생각했다”는 문장을 수십 번 곱씹었다. 생각은 항상 답을 준다. 서울에 들어설 즈음 “아 그거였구나”하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척 보면 안다는 것은 A씨가 가진 경험의 산물이었다. 수십년간 전구를 끼고 살아온 A씨. 그는 우연히 LED를 본 순간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머리에 있던 데이터베이스가 이 사업은 된다는 신호를 줬다. 사업에 대한 열정은 당장 기술자를 찾고, 남들보다 빨리 투자하게 만들었다. 경영학자들은 기업가들에게 섬광처럼 다가오는 느낌을 ‘직관’이라고 부른다.

몰입은 역발상으로 이끌고

“일만 생각했다”는 B회장의 말은 ‘몰입’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는 항상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하고, 사업만 생각했다고 한다. 위기 때는 답을 찾을 때까지 며칠 밤을 고민하다 은행이 말릴 정도의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결심했다. 모험이자 역발상이었다. 이 투자는 회사를 세계 시장의 강자로 만들어줬다. 한 경영학자는 “몰입은 정신이 아주 깊은 곳에 다다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상태”라고 했다. 그 몰입이 B회장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었다.

두 사람은 전형적인 한국의 중소기업인이다. 공부할 형편이 안돼 일찌감치 일터로 나갔다. 서울 문래동, 경기 안양 등에 있는 공장을 다니며 생계문제를 해결했다. 어느 순간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독립해 수백억~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일궜다.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가난 도전 열정 같은 단어들이었다. 멋지게 포장할 줄 모르는 그들은 꾸밈없이 성공비결을 털어놓았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 다행이었다.

요즘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오늘도 전국 수십만 개 공장에서 수많은 A씨와 B회장은 더 큰 목표를 위해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글로벌 강자를 꿈꾸는 우리 중소기업인들은 살아 있는 기업가 정신의 표상인지도 모른다. 기업가 정신은 멀리 있지 않다.

김용준 중소기업부 차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