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김기정 변호사(대리)는 요즘 노사협력실에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 출신(2012년 졸업)인 김 변호사는 입사 후 법무팀 대신 이곳에서 단체협약 같은 노사관계 업무와 해외지역 노무관리 데이터베이스(DB) 구축작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육아 기간 근로단축 신청 절차와 기준을 직원들 편의에 맞게 손질해 감사 인사도 많이 받았다. 김 변호사는 “현장에서 내린 작은 처방으로 직원들이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Law&Biz] "법률 리스크 예방"…삼성·LG 非법무부서도 '로변' 채용
로스쿨 출범 이후 늘어난 변호사 인력이 다양한 분야에 취업하면서 산업계 의 법무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 기업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다양한 현업 부서에 배치해 실무에서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등 이들을 활용한 ‘예방의학’식 기업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대한항공은 최근 3년 새 인하대 로스쿨 출신 6명을 비롯해 총 세 곳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 9명을 채용했다.

이들은 법무팀을 포함해 노사협력실, 재무지원부, 고객서비스실, 자재부 등에서 순환근무한다. 박희돈 법무부장은 “로스쿨 출신 인력을 현장에 배치함에 따라 법무팀이 나서기 전에 응급 처치가 가능하고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졌다”며 “각종 계약서 등을 사전에 점검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LG그룹도 이 같은 취지로 2012년부터 비법무부서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채용해왔으며 삼성은 최근 로스쿨 출신을 따로 인턴으로 선발하기도 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금융권 진출도 늘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3년 새 로스쿨 출신 인력 25명(미국 변호사 포함)을 채용해 사내 변호사가 100명을 넘어섰다. 최근 채용된 이모 변호사는 2003년 회계사 시험에 수석 합격하고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가 서강대 로스쿨을 거쳐 금감원에 입사했다. 이상구 금감원 총무국장은 “공학을 전공하거나 다른 전문 자격을 갖춘 인력이 들어오면서 법적인 역량이 크게 강화되고 업계와의 갈등 소지가 줄었다”며 “현재 진행 중인 공채에서도 로스쿨 인력을 다수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규제 이슈와 업계 분쟁이 잦은 병원과 제약회사 등 의약계에서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법조계에서는 로스쿨 출신들의 산업계 진출이 업계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문제가 터지고 나서 해결하려고 하면 로펌도 선임해야 하고 돈이 많이 들지만 현장에서 이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면 기업은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며 “모든 영역에 법이 스며들게 하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김재훈 대표변호사는 “로펌 입장에서도 클라이언트와 좀 더 빠른 소통 및 대책 마련이 가능해져 효율적인 사건 해결이 가능해졌다”며 “로스쿨 인력에 대해 회의를 갖는 시선도 있지만 이들이 실무 경험을 두텁게 쌓고 나면 사회 전체적으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