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상품 판매 급증…"2008년 대규모 원금손실 재현 우려"

정기예금의 실질 금리가 연 2.0%에도 못 미치면서 초저금리를 견디다 못한 고객들이 주식시장과 연계된 예금 대체상품으로 몰려들고 있다.

은행들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런 상품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대규모 원금 손실을 낸 전력이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은행, 주가 연계상품 올들어 5조원 넘게 팔아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농협, 외환, 하나, 기업, 우리은행 등 7대 시중은행은 올해 들어 9월까지 주가연계신탁(ELT)과 주가연계펀드(ELF) 상품을 무려 5조3천200억원 어치나 판매했다.

지난 9월 말 현재 잔액은 14조8천346억원에 달한다.

이는 작년 말의 9조5천146억원보다 56%나 급증한 수치다.

A은행은 올해 1~9월 판매액이 3조원을 넘었으며, B은행도 1조원이 넘는 주가연계상품을 판매했다.

이들 상품은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기초로 해서 만든 상품이다.

한국, 유럽, 중국 등 3개국의 주가지수와 연계된 상품이 대부분이며, 이들 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준다.

예를 들면 국민은행의 대표 주가연계신탁은 이들 3개국 주가지수가 만기까지 한번이라도 최초 가격의 50%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연 5.9%의 세전이익을 보장한다.

신한은행 상품은 3개국 주가지수 중 2개를 골라서 주로 만들어지며, 2개국 주가지수가 모두 최초 가격의 60%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5~6%의 수익률을 보장한다.

예·적금 금리가 연 2%대 초중반까지 떨어진 점에 비춰볼 때 매우 높은 수익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 금리가 연 2%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예금보다 좀 더 나은 수익률을 줄 수 있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들 상품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위험 아닌 '고위험' 상품…"2008년 대규모 원금손실 전력"
문제는 이들 상품이 '중위험 상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국민은행은 투자 위험도에 따라 판매 상품을 5개 등급으로 나누는 투자위험등급에서 이들 상품을 2등급인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고 투자위험등급인 '매우 높은 위험(초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할 정도다.

이는 이들 상품이 주가가 폭락할 때는 대규모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상품의 경우 한국, 유럽, 중국 등의 주가지수가 하나라도 최초 가격의 60% 밑으로 내려가면 대규모 원금 손실이 난다.

만기에 주가지수가 40% 이상 떨어진다면 최소 40%, 최대 100%의 손실을 보는 구조다.

이는 다른 은행 상품들도 비슷하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가 일어났다.

한국, 유럽, 중국 등의 주가지수가 모두 최고점의 '반토막'도 안 되는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2008년 출시된 주가 연계상품의 70% 이상이 대규모 원금 손실을 냈다.

당시에도 주가 연계상품은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며 약세장의 투자 대안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세계 각국에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충격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근 상황은 2008년 금융위기 못지않은 불안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 경제권의 성장률이 급감하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1930년대 대공황과 유사한 전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주가연계상품의 기초로 삼는 '유로스탁스50' 지수의 경우 최근 1년 사이 최고점 대비 18% 하락한 적이 있으며, 중국 'HSCEI' 지수는 최고점 대비 무려 20%나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주식 연계상품의 원금 손실구간인 '지수 40% 하락'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하는 대목이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은행들의 주장을 믿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은행권 주가 연계상품의 잔액이 15조원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고객 손실이 수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

금융당국도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각 은행에 주가 연계상품의 적극적인 홍보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으며, 고객에게 위험도를 충분히 알리지 않는 불완전판매 발생을 우려해 이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은 증권사와 달리 노인이나 저학력층 등 모든 연령, 모든 계층의 사람이 찾는 곳이어서 판매 상품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며 "주가연계상품은 결코 안전한 상품이 아닌 만큼 판매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이지헌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