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문화와 세계화
붉은 빛깔의 오스만 전통 복장은 경주의 가을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북과 나팔, 전통 관현악기들이 장대한 행진곡을 토해냈다. 터키가 자랑하는 메흐테르 군악단의 연주다. 이들은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듯 경주 황성공원에 운집한 관객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이어서 ‘어머니 태양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아나톨리아 공연은 사랑과 생명존중, 관용의 정신을 보여줬다. ‘경주에서의 이스탄불’ 공연은 혈맹의 형제국가에 대한 우정을 따뜻하고도 진솔하게 표현했다.

지난해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성공적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에 대한 답방으로 성사된 문화행사 ‘이스탄불 in 경주’의 지난달 12일 개막공연을 보면서 나는 문화의 상호주의와 다양성 존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다. 터키는 6·25전쟁을 통해 한국과 혈맹의 유대를 맺었고 2002월드컵 때 감동적인 장면으로 이를 다시 확인했다. 작년에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처음으로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정치 경제적인 물리적 거리를 넘어 두 나라 간 다져온 우의와 문화력이 우리 상품에 대한 호감과 대한민국 브랜드가치를 높여준 사례다.

문화교류는 품격과 함께 보고 듣고 느끼며 만나는 기쁨을 안겨준다. 경주는 인구 26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나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라센 제국의 바그다드, 당나라 장안과 함께 세계 3대도시에 속한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었다.

우리는 전국 어디를 가도 나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공주, 부여, 전주, 나주, 강릉, 철원, 김해, 안동, 상주 등 다 열거할 수 없다. 그중 신라 천 년의 역사는 경주를 통해 거대도시 이스탄불과 더불어 실크로드 동서 문명교류의 출발점을 이뤘다.

세계화의 출발로서 지방화를 얘기하고자 한다. 가장 지역적인 문화가 가장 세계적이 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에 강렬하게 숨어있는 끼가 지금 한류를 통해 보석처럼 반짝이며 튀어나오고 있다. 예술가들의 활약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값을 올리고 한국 제품을 사게끔 이끌고 있다.

문화의 힘이다. 모든 지역에서 이 같은 가능성이 떨쳐 나오게 하자. 그 강력한 동인은 창의와 자율이다. 그리고 열정과 함께함이다. 최선의 지방화는 최고의 세계화를 이룰 것이다. 이름하여 ‘세방화(世邦化·glocalization)’다. 문화융성도 지역문화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특성화하며 개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창조적인 문화 리더들의 역할을 기대하며 모든 지역의 문화애호 시민이 열정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박광무 <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