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지난 23일 열린 ‘영연방 FTA 국회비준 반대 범축산인 총궐기대회’  현장에서 영등포경찰서 소음측정팀 경찰관들이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지난 23일 열린 ‘영연방 FTA 국회비준 반대 범축산인 총궐기대회’ 현장에서 영등포경찰서 소음측정팀 경찰관들이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지난 23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공원과 왕복 4차로를 두고 마주하는 주상복합건물 ‘더샵 아일랜드 파크’ 앞. ‘소음관리’라는 문구가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영등포경찰서 소음측정팀 신현수 경사와 김세우 경장이 측정기로 소음을 재고 있었다. 이들은 영연방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전국한우협회, 대한한돈협회,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오리협회 등 축산 관련 단체가 두 시간여 뒤 주최할 ‘영연방 FTA 국회비준 반대 범축산인 총궐기대회’에 앞서 여의도공원 일대의 평상시 소음을 측정 중이었다. 신 경사는 “집회 현장의 스피커 바로 옆에서 소음을 측정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오해”라며 “소음 피해가 예상되는 주변 건물 앞에서 소음을 측정해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22일부터 강화된 기준 적용…소음 규제 한도 5dB씩 낮춰
피해 예상되는 건물 앞에서 10분간 측정해 평균치 내
벨소리보다 크다고 처벌 안돼

올해 기준 어긴 집회 6.7%
악성 소음으로 시민 피해 많아…미국 등 해외 기준은 더 엄격


오후 2시15분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축산인 1만여명이 모인 집회가 시작되자 신 경사와 동료들의 눈길이 다시 소음측정기에 쏠렸다.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는 아리랑과 농민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자 집회 현장에서 100여m 떨어진 건물 앞에 설치된 측정기의 순간 최고 소음도는 73dB까지 치솟았다. 음악 소리가 컸지만, 주간의 집회 소음 기준치(75dB)를 넘지는 않았다. 세 시간여 지속된 집회는 한 번도 소음 기준을 벗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날 집회를 대행한 업체의 김모씨(43)는 “지난 10년간 각종 집회에서 음향을 담당했지만 오늘처럼 음량을 줄인 적은 없었다”며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은 집회 주최 측의 요구로 스피커 볼륨을 과거보다 30%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영연방 FTA 국회비준 반대 범축산인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축산단체 회원들이 구호에 맞춰 시위하고 있다.
‘영연방 FTA 국회비준 반대 범축산인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축산단체 회원들이 구호에 맞춰 시위하고 있다.
지나치게 큰 집회 소음에 따른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경찰이 22일부터 강화된 소음 기준을 집회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 달 계도기간(11월21일까지)의 초반이긴 하지만 일단 대부분 집회에서 기준이 지켜지고 있어 이번 소음 기준 강화가 합리적인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하는 계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지난 4월 전국 경찰에 집회·시위 현장의 소음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소음전담팀을 구성한 경찰은 향후 이 기준을 해외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등은 “집회문화 개선엔 공감하지만 현행 기준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로 엄격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 “스피커 옆 소음 측정은 오해”

개정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광장과 상가 등 기타지역에 적용되던 소음 규제 한도는 주간 80dB, 야간 70dB에서 5dB씩 낮아져 각각 75dB과 65dB로 강화됐다. 그동안 기타지역으로 분류했던 종합병원과 공공도서관 인근 지역에서도 주거·학교 지역과 같은 엄격한 기준(주간 65dB, 야간 60dB)이 적용된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80dB은 지하철역에 전동차가 들어올 때 들리는 수준의 소음이다. 70dB은 전화벨 소리, 60dB은 일상적인 대화 소리와 같은 음량이다. 기존에는 5분씩 두 번 소음을 측정해 그 평균값을 적용했으나 22일부터는 10분간 소음을 재 평균치를 내는 방식으로 측정 방식도 바뀌었다.
[경찰팀 리포트] "시위대, 볼륨을 낮춰라" vs "전화벨 소리 정도가 기준이라고?"
기준이 강화되자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은 현실성이 결여된 규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수많은 차량과 유동인구가 지나는 도심 광장은 평상시에도 경찰 기준보다 더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한다”며 “개정된 기준을 적용하면 제대로 된 집회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측정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부른 오해라고 반박한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스피커나 확성기 등에 바로 측정기를 대고 재는 것이 아니라 소음 피해가 예상되는 주변 건물 외벽에서 1.5~3m가량 떨어져 측정하기 때문에 소음이 전화벨 소리보다 크다고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찰청 정보과 관계자는 “미국 워싱턴DC 상업지역은 스피커에서 1m 떨어져 측정해 주간에는 65dB, 야간엔 60dB이 넘으면 처벌하고 있다”며 “한국의 규제는 해외 선진국보다 오히려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끄러운 도심 집회의 경우 평상시 소음을 고려해 측정값을 보정하기 때문에 무조건 75dB과 65dB이 넘으면 처벌된다는 얘기도 오해라고 설명했다.

악의적 소음은 더 강하게 단속

경찰이 소음 기준 강화라는 ‘칼’을 빼든 것은 악성 소음으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1~9월 경찰이 소음을 측정한 1만6271건의 집회 가운데 기존의 소음 기준을 초과한 집회는 1113건(6.7%)에 달했다.

이 통계에는 참가 인원이 수십명인 소규모 집회까지 포함돼 있어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참여하는 중대형 집회 대부분은 소음 기준을 위반했다는 게 경찰 측 주장이다. 인력과 경찰의 의지 부족 탓에 기준을 위반해도 처벌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경찰은 이번 기준 강화를 계기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악의적으로 과도한 소음을 발생하는 행위는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찰이 군부대 이전을 요구하며 군부대 앞에서 2년여간 장송곡을 크게 튼 집회 주도자들에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 아닌 상해죄를 적용해 지난 5월 기소한 것과 같은 경우다. ‘35사단 임실이전 반대투쟁위원회’ 간부들은 2011년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35사단과 임실군청 앞에서 최대 81.2dB 크기로 장송곡을 내보냈다. 이들의 악성 소음에 군 장병 네 명이 스트레스와 이명 증상 등을 호소할 정도였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임금 체불이나 정리 해고 등의 문제와 연관되면 기업 사옥이나 경영자 집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음악을 틀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을 내는 경우가 많다”며 “집회 참가자들의 처지는 이해되지만 이 때문에 아무 관련 없는 시민들이 큰 피해를 보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듯

일선 경찰관들은 집회 중에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이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소음을 줄여줄 것을 주최 측에 요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집시법에 따르면 경찰은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소리를 줄여달라고 행사 주최 측에 요구하는 ‘유지명령(1차 경고)’과 소음 행위를 멈추라고 요구하는 ‘정지명령(2차 경고)’을 내릴 수 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확성기와 스피커 등을 집회가 끝날 때까지 강제로 보관하는 조치도 취할 수 있다.

경찰은 이 같은 행정지도와 시정명령을 집회 주최자에 직접 전달해야 하는데, 수만명이 참석하는 대형 집회 현장에서 주최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처벌 대상자를 특정하는 일도 쉽지 않다. 법에 따르면 소음 기준을 어긴 집회 주최자는 ‘6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여러 단체가 집회를 공동으로 주최하면 어느 단체의 누구를 처벌해야 할지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홍선표/오형주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