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블루칩(대형우량주) 기업들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다우존스지수에 편입된 30개 우량기업 중 10개는 지난 1년간 매출이 감소했거나 간신히 제자리 걸음을 했다. 나머지 20개 기업도 성장세가 부진하다. 500개 상장기업의 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S&P500지수는 올 들어 4.3% 오른 반면, 다우지수는 0.7%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미국의 블루칩들이 ‘1등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때는 업계 1위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지만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채 안주하는 바람에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1등 함정' 빠졌나…美 블루칩기업, 줄줄이 '실적 쇼크'
○몸집 커져 변화에 둔감

블루칩의 맏형 격인 코카콜라는 지난 3분기 시장의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매출과 이익을 기록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IBM은 10분기 연속 매출 감소에 순이익도 급감했다. 반도체 사업 매각에 따른 일회성 손실을 제외하더라도 실적이 예상치에 미치지 못했다. AT&T도 기대 이하의 3분기 매출과 작년 동기보다 줄어든 순이익을 발표하면서 올해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대표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동일 점포 매출이 2012년 이후 정체 상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3분기 소폭 개선된 실적을 내놨지만 주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내내 주당 30달러 아래에 머물러 있다. 캐터필러, JP모간체이스, 화이자 등도 지난 1년 새 매출이 하락했다.

시장분석업체 S&P캐피털IQ는 “미국 30대 기업의 지난 1년간 매출 증가율은 같은 기간 미국의 물가상승률(1.7%)에도 못 미쳤다”며 “다우지수 종목이 시장을 선도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분석했다. 최근 달러 강세도 수출 중심 블루칩 기업들의 실적에 부담이 되고 있다.

○“작은 게 좋다” 분사 열풍

미국의 30대 기업은 저마다 어려운 숙제를 떠안고 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받던 콜라는 웰빙 열풍으로 인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멕시코에서 탄산음료를 겨냥해 ‘설탕세’를 도입하는 등 신흥국에서도 외면받는 처지다. 반도체 제조업체인 IBM은 정보기술(IT)업계 흐름이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WSJ는 “소비 트렌드와 시대가 변하면 사업 방향도 전환해야 하는데 덩치가 너무 커진 기업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때 독보적인 기술과 생산공정, 뛰어난 직원들을 확보해 1등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자원이 만들어 낸 틀 속에 갇혀 출구를 못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대해진 조직이 성장을 막는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 스핀오프(분사) 사례도 늘고 있다. 이달 초 휴렛팩커드(HP)가 PC와 프린터 사업부를 쪼개기로 결정한 데 이어 글로벌 보안업체 시만텍,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 네덜란드 IT업체 필립스 등이 분사를 결정했다. 사업 부문별로 ‘옥석 가리기’를 하라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입김이 세진 영향도 있다.

시드니 핀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룡 기업들은 글로벌화, 기술의 초고속 발전, 복잡한 생산공정이라는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며 “분사 등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블루칩의 단골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잔인한 10월’을 보내고 있다. 버핏 회장이 운영하는 벅셔해서웨이가 투자한 코카콜라, IBM, 웰스파고 등이 3분기 저조한 실적을 공개하면서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버핏은 이번주에만 25억2000만달러(약 2조6599억원)의 손실을 봤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