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 '아날로그 바람'] 700만원 냉장고의 비밀…"딸깍" 탄산水 레버, 고객 마음 훔쳤다
2013년 여름 삼성전자가 최고급 냉장고인 ‘셰프컬렉션’을 개발할 때였다.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전상운 책임연구원은 고민에 빠졌다. 대당 가격이 700만원이 넘는 제품인 만큼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차별화된 요소를 찾아내야 했다. 내장 기술 등 기능은 최고 수준이었다. 세련된 금속성 외관에 탄산수(스파클링 워터)가 나오는 기능까지 추가했다. 고객에게 고품격 제품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뭔가’가 필요했다. 소비자의 ‘오감(五感)’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래서 적용한 게 스파클링 워터용 ‘레버(손잡이·사진)’다. 기존의 버튼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아래로 당기면 ‘딸깍’ 소리가 나며 시원한 스파클링 워터가 나온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소비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이끌었다. 셰프컬렉션의 ‘화룡점정’이었다는 게 전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사람들은 레버를 보면 누르고 싶어하고, 누르면 나오는 피드백(소리)을 듣고 즐거움을 느낀다”며 “기능을 넘어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생활가전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전자업계 '아날로그 바람'] 700만원 냉장고의 비밀…"딸깍" 탄산水 레버, 고객 마음 훔쳤다
진공관 오디오, LP 플레이어 인기

디자인에서만 아날로그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전자제품의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찾길 원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리’다. 디지털 신호를 입자로 만들어 보여주는 화면이 대표적 디지털 기술인 반면 소리는 울림을 통해 소비자의 귀에 전달되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기술이다.

예전까지 TV 업계는 화질 경쟁에 매달렸다. 하지만 초고화질(UHD) TV 시대가 열리면서 더 이상 화질 차이를 눈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용어들도 대부분의 소비자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래서 TV업계가 찾은 차별화 포인트가 소리다.

일본 소니는 최근 스피커를 전면에 배치한 TV를 선보였다. 베젤(테두리)을 얇게 만드는 TV 업계 트렌드와는 다른 방향이다. 세련된 디자인을 포기하면서까지 스피커를 전면에 배치한 건 제대로 된 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다.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에서 만난 소니 관계자는 “베젤을 얇게 하기 위해 스피커를 뒤에 배치하면 소리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UHD에 맞는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선 좋은 소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삼성에서는 아예 진공관이 장착된 오디오를 출시하기도 했다.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면 비오는 날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차분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마치 LP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최근 들어 미국에선 LP와 LP플레이어 판매도 늘고 있다. 닐슨사운드스캔에 따르면 2005년 90만장이었던 LP 판매는 지난해 600만장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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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날로그인가

전자업계에 아날로그 붐이 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디지털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기술 수준이 엇비슷해지면서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할 요소를 아날로그에서 찾고 있다. 전 책임연구원은 “기술의 포화 상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은 예전처럼 단순히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기보다는 기술을 얼마나 직관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중요시 여긴다”며 “기능은 당연하고 감동이 있지 않으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넓은 고객층을 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날로그 요소가 가미된 전자제품의 강점이다. LG전자에서 클래식 TV를 디자인한 김준기 책임디자이너는 “클래식 TV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20~30대 여성은 물론 브라운관 TV의 추억을 가진 60~70대 ‘실버 세대’에게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옛 추억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는 한 아날로그의 인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열리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에는 전자제품이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면, 이제는 사용자와 전자제품이 서로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문인식, 심박센서 등이 대표적 사례다.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