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반대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단기간에 양사의 주가가 급락해서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따지기엔 현 시점의 주가가 너무 낮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주식매수권청구권 행사가격과 현재 주가의 차이는 15% 이상이다.
'삼성重-엔지니어링 합병' 변수 된 주식매수청구권
○주가 하락 암초 만난 합병안

합병을 발표한 지난 9월1일 이후 삼성중공업 주가는 21.2%,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24.5% 떨어졌다. 조선, 해양플랜트 업황이 부진한 게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렇다 할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삼성중공업 주가는 24일 종가 기준 2만280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인 2만7003원보다 15.6% 낮다.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도 5만430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6만5439원보다 17.0% 싸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을 현저하게 밑돌자 국민연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게 증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민연금은 26일까지 합병 반대의사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에 서면으로 전달할 것으로 확인됐다. 주주총회 이전에 찬성의사를 표시하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다. 일단 반대 의사를 밝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의도다. 이후 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가 열리는 27일에는 기권표를 던진 뒤 매수청구권 신청 마감일인 다음달 17일까지 주가 추이를 보면서 주식매수청구권을 신청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최종적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양사의 주식 매입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민연금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5.90%(235만8877주)를 보유하고 있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삼성엔지니어링은 1543억6255만원을 들여 그 지분을 사줘야 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할 당시 매수청구요청 금액이 4100억원을 넘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인과 다른 기관 투자가들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양사 합병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반대표가 전체의 18%를 넘어서면 합병을 재고할 수 있다는 게 삼성 측의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삼성중공업 지분 5.91%(1364만3311주)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시 매수청구 규모는 3684억1032만원가량이다.

○11월17일 주가에 달렸다

주식매수청구권 탓에 합병이 무산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2009년 현대모비스는 오토넷과 합병을 추진했지만 2조8796억원에 달하는 매수청구액이 몰려 합병을 포기했다. 주가가 단기에 과도하게 떨어지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줄을 이었던 것. 현대모비스는 주가가 회복된 후에야 오토넷을 품을 수 있었다. 2008년에도 합병을 추진하던 LG이노텍과 LG마이크론이 1766억원에 달하는 매수청구액에 가로막혀 ‘합병 포기’를 선언한 사례가 있다.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실제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지 여부는 두 회사의 11월17일 주가에 달려 있다. 삼성그룹이 주가 부양책을 발표해 매수청구권 가격 수준으로 주가를 띄운다면 국민연금이 막판에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액주주를 비롯해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찬성 의견을 통보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계열사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하는 자산운용사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 주식매수청구권

주식회사의 합병·영업양도 등 주주의 이익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법정 사항에 관해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는 경우 이에 반하여 주주가 자기 소유주식을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