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원 포에버21 창업자 겸 CEO "신속히 유행의 중심에 서라"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리서치팀과 미국 패션잡지 틴보그가 공동으로 10대 소녀들이 선호하는 50대 브랜드를 선정했다. 브랜드 선호도와 인지도, 매력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브랜드는 포에버21이었다.

미국에서 무일푼의 이민자로 밑바닥부터 시작한 장도원 포에버21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30년 만에 미국 패션업계의 한복판에 섰다. 장 CEO는 지난달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400대 부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순자산 52억달러(약 5조4780억원)로 93위에 기록됐다.

미국 46개주와 영국 캐나다 일본 유럽 등에 470여개 매장과 4만여명의 직원을 둔 포에버21을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업황 침체로 다수의 의류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형 매장을 확대하면서 빠르게 성장 일로를 걷고 있다”고 평가했다.

명동 커피배달원에서 미국 부호로

포에버21은 미국의 대표적인 캐주얼 의류 업체다. H&M, 자라처럼 패스트패션 업체의 대명사다. 패스트패션은 제조업자가 제조와 유통, 판매 등을 모두 담당하는 걸 의미한다. 이 덕분에 상품 가격을 낮춰 젊은 소비자층에 인기가 있다. 상품 교체 주기도 빨라 2~3주에 한 번 새로운 디자인을 빠르게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포에버21의 한 해 매출은 35억달러를 웃돈다.

2009년 포브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25명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면서 장 CEO 얘기를 첫 번째로 실었다. 장 CEO를 빼면 대부분 고학력자였다. 맨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업가는 장 CEO를 비롯해 소수였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명동에서 커피배달 전문점 일을 했다. 두 명이 들어가 있기도 벅찬 작은 규모의 가게였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명동에 터를 잡은 이유는 커피 배달이 유행을 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벌이는 쏠쏠했지만 번화가 명동에서 가진 것 하나 없는 그가 무작정 사업을 계속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1981년 장 CEO는 꿈과 패기만 갖고 무작정 미국행을 선택했다. 더 넓은 땅에서 기회를 잡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무일푼이었지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오기로 선택한 결정이었다.

언어부터 문화, 생활 양식 등 모든 게 낯선 미국에서 그는 청소, 주유소 아르바이트, 식당 접시닦이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3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사업을 할 밑천을 손에 쥐게 됐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패션업이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그가 자리를 잡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는 의류 매장이 유난히 많았다. 매장을 소유한 사장들은 대부분 좋은 차를 몰고 부유한 삶을 누렸다. 20대 초반의 장 CEO는 그런 모습이 그저 멋있고 부러웠다. 그러나 매장에서 판매하는 옷들은 너무 비싸 살 엄두를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좋은 옷을 싸게 팔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리고 패션사업에 뛰어들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싶다는 목표의식이 작용했다. 그렇게 1984년 처음 패션21이라는 이름으로 매장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꾼 상호가 바로 포에버21이다. 영업 감각과 열정을 바탕으로 그의 사업은 고속성장을 했다.

“맨손 청년들의 희망이 되고 싶어”

포에버21은 장 CEO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영원히 21세의 젊은 마음을 유지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주요 소비자 계층인 20대를 노린 측면도 있지만 꿈을 안고 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마음가짐과 도전의식, 순수한 열정을 잊지 말자는 다짐도 담겨 있다.

처음부터 사업이 잘 풀린 건 아니었다.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이민자에 대한 텃세도 심했다.

이때 빛을 발한 것이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이었다. 일단 도전하고, 한번 도전하면 빠르고 신속하게 업무를 진행하는 추진력을 말한다. 장 CEO가 포에버21의 성공을 언급할 때 빠짐없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빨리빨리’ 정신이다.

패스트패션이라는 업종의 특성과도 잘 맞았다. 포에버21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고민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다른 업체들과 달랐다. 사업이 어려움을 겪거나 힘든 시기에 금세 툴툴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던 힘도 ‘빨리빨리’ 정신에서 나왔다. 패스트패션 업체답게 포에버21은 신속함을 생명으로 삼는다. 재빨리 유행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다.

의류 브랜드 디자인팀을 따로 만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에버21은 전문가 집단이 그때그때 유행하는 아이템을 수집해 그중 상업적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상품화한다. 이렇게 되면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가격으로 즉시 공급하는 게 가능해진다.

포에버21은 가족경영을 하고 있다. 부인 장진숙씨 가 구매를, 두 딸이 마케팅과 상품 전시를 책임지는 임원 역할을 한다. 가족경영은 끊임없는 대화와 격려, 경쟁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장 CEO는 다민족 기업인 만큼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즐겁게 일하는 조직문화와 고객 이익의 극대화가 장 CEO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가치다.

그는 정도를 걷는 경영철학도 강조한다.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거나 이른바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업이란 부침이 있게 마련이라 한순간 방심하고 무리하면 쉽게 몰락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다만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투자만 선별하고 있다.

부유하고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있는 그였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도록 애쓰고 있다. 어려운 사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으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기업의 도리라는 생각에서다.

장 CEO는 외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목표는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