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발칸 유럽' 펴낸 이기성 씨 "은퇴 후 새로운 삶…세상을 넓게 보게 됐죠"
대기업 임원을 지내다 퇴임 후 각국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기성 씨(61·사진)가 ‘발칸 유럽 역사 산책’이라는 책을 내놨다. 중국 여행기인 ‘장안 그리고 시안’, 스페인 여행기인 ‘자신의 반쪽을 지워버린 사람들’에 이어 세 번째다. 그의 집필 목적은 확고하다. 은퇴 후 제2의 삶을 사는 사람의 바람직한 ‘롤 모델’을 알리기 위해서다. “앞만 보고 달리다 은퇴한 다음 뭘 할지 몰라 헤매는 사람이 많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정하고 깊게 연구해서 각 분야의 기초와 품격을 높였으면 합니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SK그룹에 입사, 2007년 충청에너지서비스(옛 청주도시가스) 경영지원본부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이후 2007년 8월부터 1년간 가족과 함께 중국 서북지방으로 건너가 시안(옛 장안)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봤다.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왕조가 수도로 삼은 곳입니다. 사람들이 자존심이 아주 강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유서 깊은 양반집 가문 도시랄까. 비슷한 조건과 환경에서 경험하면 사람들은 대개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수십년간의 지친 사회생활을 달래려 별생각 없이 간 곳, 그는 여기서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각국을 넓은 시각으로 소개하는 것을 새 삶의 목표로 삼았다.

이듬해에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두 달간 마드리드 등 13개 도시를 둘러봤다. 강력한 군대를 기반으로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세계를 호령하다 갑자기 추락한 이유를 문화적으로 추적했다. 2012년에는 발칸반도를 방문했고 2013년에는 독일, 올해는 이탈리아를 각각 2개월간 여행했다.

얼핏 그의 삶이 ‘가진 자의 여유’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재벌 회장도, 저소득층도 돈이 모자란다고 느끼는 건 똑같습니다. 돈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행과 저술, 오직 두 가지만 합니다. 여행하면서도 배 쫄쫄 굶어가면서 아껴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해요.”

그가 ‘발칸 유럽 역사 산책’을 쓴 것은 발칸반도를 반면교사로 한국 국민의 역량을 논하기 위해서다. “남슬라브족은 1400년 만에 민족통합국가(유고슬라비아)를 구성했다가 인종청소 광풍 등 ‘콩가루’가 돼 버렸어요. 민족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역량은 어떤가요. 눈만 뜨면 보수 진보 갈라져 싸우고 패거리, 줄세우기 문화가 강한 우리도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봅니다. 사회 원로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좌우 대립이 있을 때 중재하고 말려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정작 본인들이 더 싸우니 혼란이 더 커지는 게 아닐까요.”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