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소속팀인 시애틀 매리너스는 내년 시즌 개막전 시구자로 한국의 이동통신장비 업체 케이엠더블유(KMW)의 김덕용 회장을 최근 선정했다. 과거 개막전 시구자는 랜디 존슨 등 시애틀 출신의 스포츠 스타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한 중견기업인이 미국 메이저리그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게 된 데는 ‘시애틀 매리너스 홈구장 세이프코필드를 첨단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으로 전면 교체하는 사업을 수주’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美 MLB 뚫은 중견기업인…돈보다 미래를 본 '始球'
○MLB서 첫 LED 교체

통신장비 사업만으로는 회사를 키우는 데 한계를 느낀 김 회장은 신사업에 대해 고민하다 2010년 LED 조명기기를 내놓았다. 통신장비 제조에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LED 조명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통신장비와 LED 조명은 제조 공정이 80%가량 겹친다”고 설명했다. LED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처음 내놓은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품질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가격이 아주 싸지도 않았던 탓이다. 오스람 필립스 등 글로벌 조명 기업들의 우수한 제품과,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제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김 회장은 일반적인 LED 조명기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회사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스포츠 조명기기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4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지난해 11월 태양광과 비슷한 빛깔을 내는 LED 조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김 회장은 제품 개발 작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국내외 경기장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야간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빛(태양)에 가장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는 LED 조명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김 회장은 지난해 초 미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시애틀 매리너스가 LED 조명으로 교체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그해 3월 시애틀로 날아가 관계자들을 만났다. 마지막 고비는 ‘조명의 최종 검열자’라 할 수 있는 방송중계팀이었다. 이들이 카메라로 찍어 색 표현능력을 측정한 뒤 ‘오케이’ 사인을 냈다. “기존 조명의 색 표현력이 65% 수준(태양과 같은 표현력이 100%)인데, 우리 것은 85%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시애틀 구단은 다른 세계적 조명 회사들도 불러 테스트했지만 KMW의 수준을 맞출 수 있는 업체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이프코필드는 메이저리그 구장 중 처음으로 주조명 567대를 전부 LED로 바꾸는 작업을 내년 초 진행하기로 했다.

○축구장 골프장 등으로 확대

LED 조명으로 교체할 계획이 처음에는 없었던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은 교체 비용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김 회장은 시애틀로 다시 건너가 협상을 했다. 그는 ‘책정된 예산 일부만 현금으로 주겠다’는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머지는 광고판 설치, VIP 좌석, 구장 내 세미나룸 사용 등 ‘현물’로 지급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내년 개막전 시구를 김 회장이 하는 것도 이 조건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돈을 당장 더 받는 것보다는 상징성이 큰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매리너스 구장을 LED 조명으로 바꾸는 것을 계기로 스포츠 조명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KMW는 태국 방콕 인근의 ‘판야 인드라 골프장’ 27개홀 중 19개홀의 조명을 LED로 바꾸는 사업자로도 최근 선정됐다. 스포츠 조명 분야 강자인 일본 이와사키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은 이 회사에 큰 성과였다. 테스트 결과 같은 소비전력(400W)에서 이와사키 제품보다 25% 이상 밝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소속팀인 뮌헨글라트바흐도 보루시아파크 외곽 조명을 지난 8월 KMW의 LED로 바꿨다. 김 회장은 “KMW의 조명 브랜드 기가테라를 세계 스포츠 조명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화성=안재광/김용준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