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長壽위험관리에 필요한 것들
24일부터 시작되는 가을 윤달을 피해 결혼을 서두른 예비부부들이 많아서인지 올가을은 유난히도 결혼식이 많았다. 새 출발을 하는 신혼부부들의 활짝 핀 얼굴과 청명한 가을 날씨로 예식장은 가는 곳마다 풍성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식이 끝나고 이어진 친구들과의 대화는 무거웠다.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의 친구들은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이미 은퇴한 경우가 많고, 그나마 새 일터를 찾아 형편이 나은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늘어났다는 하소연들이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까지 웬 우울한 얘기냐고 화제를 돌렸지만 노후대책 이야기는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주제다. 운이 좋아 소위 3대 연금(공무원·사학·군인)에 들어 있는 친구들은 낫지만 국민연금에만 들어 있거나 국민연금 혜택조차 받기 어려운 친구들은 오래 사는 것이 두렵단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하철 무임승차가 되는 65세 노인의 기대여명이 2002년만 해도 17.1년이었으나 10년 후인 2012년에는 20.1년으로 3년이나 늘었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65세 남자의 2명 중 1명은 83세까지, 여자도 2명 중 1명은 88세까지 살게 된다는 얘기다. 기대여명이라는 전문용어를 동원하지 않아도 왜 노후대비가 필요한지 확 와닿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638만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2.7%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712만명이나 되는 베이비붐 세대는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이 짧아 충분한 노후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인데도 이미 은퇴가 시작됐다. 현재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5.7%와 비교해 크게 낮지 않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 중 국민연금 가입자는 전체 대상자의 절반이 안 된다. 소위 다층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2, 3층을 구성하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가입률도 베이비붐 세대는 각각 22.6%, 17.4%에 불과하다. 게다가 개인 자산구성은 대부분 부동산에 쏠려 있다. 정부가 지난 8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면서 2016년부터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고 2022년부터는 모든 기업으로 확대한다고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그나마 가입했던 연금저축을 해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로 접어들며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라는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연금시장이 위축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공적연금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에 너무 부족하고,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은 아직 미흡하다 보니 오래 살기가 무섭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제는 개개인에게 맡겨진 장수위험관리에 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세제를 정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 적용되는 연금저축 세액공제 방식으로의 전환은 조세 부담의 역진성을 완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의 소득공제 방식에 비해 국민의 노후준비를 돕는다는 정책적 목적과는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다. 연금저축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공제방식을 이원화하든가 베이비붐 세대에 한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퇴직금이나 개인연금의 경우 일시금 수령에 대한 세금 부담을 늘리고 장기간 연금 수급 시 연금소득세를 줄여줘 종신연금 수급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적립된 사적연금의 지급 방법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세제상 지원대책이 나와야 한다. 저소득층에 대해선 정부의 정책 상품인 연금저축에 가입하는 경우 일정금액을 보조해 주는 독일식 리스터연금(Riester Pension)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오래 사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국민행복 희망시대는 요원해진다.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