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無보수 명예가 高보수 권력으로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그짝이다. 시·도 의원들에게 유급보좌관을 붙인다는 방안이 그렇다. 지자체들은 복지디폴트 선언이요, 교육청들도 금고가 바닥난 와중의 소식이다. 1991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시작한 명예직의 광역의원들은 2006년부터 의정비라며 급여도 받아 왔다. 이제 보좌관까지 갖추면 작은 국회의원이다. 당장은 3~4명당 1명의 보좌관이라지만 곧 1인 1보좌관으로 갈 것이다. 지난해에도 전담보좌관제가 추진됐으나 여론에 밀렸다가 최근 다시 불거진 과정이 말해준다. 제도가 일단 시행되면 의원마다 보좌관을 여럿 두겠다는 것도 시간 문제다. 무보수 명예직이 고보수 권력직으로 바뀌려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사자들 외에 찬성은 거의 안 들린다.

기초의회 폐지나 광역 줄여야

지난 6월 선거로 17개 시·도에는 705명의 광역의원들이 선출됐다. 인구 15만명인 세종시도 13명이나 된다. 세종시 의원은 겨우 1만명을 대표한다. 주민 32만명에 한 명꼴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와 비교하면 부풀려진 대의권이다. 명예직 내지는 봉사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이들의 연급여는 평균 5460만원. 여기에 일단 3~4명에 한 명이라 해도 6급직의 보좌관이면 매년 160억원이 더 든다. 직접 인건비만 그렇고 부대비용은 계산도 안된다. 김포 같은 데는 기초 지자체지만 151억원짜리 새 의회청사 건설을 추진 중이다. 결과가 좋다면, 즉 생산성이 높다면야 비용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중앙무대 뺨치는 구태정치에 툭하면 스캔들이다. 비용(input) 대비 결과(output)의 불균형을 부실이라고 정의한다면 지방의회야말로 부실 시스템이다.

소수이겠지만 당사자 중에도 일부는 반대여론도 듣는 모양이다. 지역의 의회들이 대개 의원별 전담보좌관이 아니라며 열부터 내는 것과 대조적으로 서울시의회 일각은 납세자인 유권자들 반응에도 민감하다고 들린다. 이런 눈치보기까지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다. 유급보좌관을 두려면 기초의회는 폐지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 서울시의회 등지에서도 나오는 것은 작은 희망이다. 고려할 만한 대안이다. 아니면 광역의원 수라도 절반 이하로 확 줄여야 보좌관 논의가 가능하다. 기초 철폐와 광역 감축을 함께 해낸다면 지방자치는 비약할 것이다. 그렇게 거품을 빼지 않고는 유급보좌관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결국 국회로…제 수족 자를까

이 문제도 결국은 국회로 수렴된다. 시·도와 시·군·구 의원, 때로는 시장·군수까지 모두 지역 국회의원의 정치적 하청업자들이다. 아전처럼 휘둘러온 정치예비군인데 제 돈 안 내는 마름시스템을 국회가 버리려 할까. 정치과잉을 해결하겠다며 스스로 공약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국회다. 지금 안전행정부가 유급보좌관 도입을 위해 지방자치법을 바꾸자는 배경에는 선거 때면 부각하는 뭇 호걸들이나 무수한 정계 낭인들을 어떻게든 수용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다.

경기와 제주의 지방 연정이 물거품된 과정을 보면 지방행정에 싸구려 정치의 범람은 심각한 지경이다. 도 의회를 장악한 야당과 여당 도지사의 갈등이나 서로 발목잡기는 중앙정치 저리 가라다. 지방의회를 중앙정계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기거나 중앙당의 대리인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파킨슨 법칙은 예외가 아니다. 한국형 지방자치는 20여년 만에 한계점에 다가서는 것 같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