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수능 세계지리 8번 오류 1심 판결 잘 했더라면…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해 강조되고 있는 ‘하급심 강화’의 필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 논란이다. 기자는 법조계 취재를 맡은 지난해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올 때마다 이를 모아놨는데 이 사건 1심도 목록에 있었다. 문항에서 정답으로 꼽은 ‘보기’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았음에도 “교과서에 그렇게 나왔다”는 이유로 정답으로 판단한 게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교과서로 출제범위가 제한된다는 것은 교과서가 진실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수험생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지난해 겨울 수능 응시생들은 “세계지리 8번 문제에 오류가 있으니 해당 과목의 등급 결정을 취소하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비중이 큰 3점짜리 문제였고 이 문제를 틀려 등급이 내려간 수험생도 있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재판은 빨리 진행됐고 그해 12월 중순에 1심 선고가 나왔다. 당시는 대학 입시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법원이 바른 판단을 했으면 큰 무리 없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선례처럼 해당 문항을 전원 정답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했고 2심이 바로 잡긴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수험생이 대학을 상대로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을 내도 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이길 수 없게 됐다. 민사 소송도 승소 가능성이 낮기는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를 틀린 수험생 1만8000명은 잘못된 문제 출제와 잘못된 판결로 인한 손해를 ‘독박’ 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잘못된 판결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긴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하급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다고 시민들을 탓하기보다 왜 승복하지 않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번 세계지리 문항 오류 소송 이슈를 대법원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양병훈 법조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