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에서 팔린 수입차는 2만3345대. 당시 24만209대였던 일본 수입차 시장 규모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후 한·일 간 수입차 시장 격차는 빠르게 줄더니 2010년 한국 수입차 시장 규모가 일본의 절반 크기로 성장했다. 이 비율은 올해 처음 68%를 넘어 70%에 육박했다. 한국(4903만명)의 2.6배인 일본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 인구 1명당 수입차 판매량은 일본의 1.8배에 달할 정도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벤틀리와 재규어랜드로버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린다. 한국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은 뭘까.
규제가 키운 수입차 시장, 어느새 日의 70%로 '쑥'
○규제가 수입차 시장 키웠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한국에서 팔린 수입 승용차는 14만5844대. 이 가운데 디젤차 비중은 68.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본에서 팔린 수입차(21만2500대) 중 디젤차 비중이 5.6%인 것과 비교된다. 바꿔 말하면 한국 수입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디젤차가 있다.

한국에서 디젤 승용차가 처음 보급된 건 2005년. 이전만 해도 한국의 디젤 승용차 배출가스 기준은 지나치게 엄격해 한국에서 디젤차를 판매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한국의 환경 규제 수준은 유럽연합(EU)의 기준치보다 질소산화물은 25배, 미세먼지는 5배나 엄격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디젤차 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수출 시장은 가솔린 중심인 미국에 치중돼 있고 국내 디젤 시장 판로는 막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부가 2005년 디젤 승용차 배출가스 기준을 EU 수준에 맞추면서 유럽 디젤차가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유차는 시끄럽다’는 인식 탓에 소비자들은 여전히 가솔린차를 선호했다. 일본 가솔린차가 수입차 시장 1위에서 5위까지를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고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대에 그쳤다.

윤대성 한국수입차협회 전무는 “2005년 이후에 수입 디젤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정숙성과 승차감을 중시하는 한국 시장의 벽을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불황과 기름값 덕에 디젤차 승승장구 `

2009년이 수입차 시장의 변곡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가 급등이 겹치면서 기름값 부담이 커진 때다. 당연히 자동차 시장에서도 연비의 중요성이 커졌다. 게다가 한국에선 유류세 때문에 경유값이 휘발유값보다 저렴해 자연스럽게 가솔린차보다 연비가 좋은 디젤차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1년 7월 발효된 한국과 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한국 수입차 시장의 지형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8%에 달했던 관세율이 단계적으로 철폐되면서 유럽 디젤차 가격이 내려갔다. 폭스바겐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대형 디젤차뿐 아니라 4000만원 안팎의 중소형 디젤차도 본격적으로 내놨다. 이때부터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던 수입차 시장에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넉넉지 않은 30대 젊은이들도 몰려들었다.

2005년까지 사실상 디젤차 개발에 손발이 묶여 있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대응은 신통치 않았다. 현대차 등은 가솔린차가 대세인 3000㏄급 이상에선 수입차 업체들보다 우위를 보이지만 디젤차 비중이 급등하고 있는 중·소형차 시장에선 고전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임원은 “독일이나 프랑스는 자국 기업의 기술 수준에 맞게 배기가스 기준을 정해 디젤차 기술을 빨리 개발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비현실적인 규제로 디젤차 개발이 늦어진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디젤차 모델을 선보여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