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이 놈의 '얇은 귀'! 주식만 샀다하면 어김없이 '깡통'
지난해 국내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 주임은 주식 투자라면 손사래를 친다. 최근 신문에서 ‘연금저축’ ‘소득공제장기펀드’ 등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고 같은 팀에 있는 황 대리에게 재테크에 대해 문의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황 대리는 “연금저축? 소장펀드? 그거는 1년 수익률이 기껏해야 연 5%지만 주식은 하루에도 15% 수익이 가능하다”며 주식 투자를 권했다. 대전에 있는 A기업이 성장성 있는 B기업과 합병해 주가가 급등할 것이라고 귀띔까지 해줬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A기업은 상한가를 쳤다. 믿음이 생긴 김 주임은 그동안 한 푼 두 푼 모은 수백만원을 A주에 몰빵했다. 그러나 그후 A기업의 대표이사가 횡령했다는 뉴스가 떴고, 예상대로 주가는 고꾸라졌다. 이제 남은 돈은 채 100만원이 안 된다. “증시에선 소문에 투자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인생의 큰 교훈을 얻었죠.”

직장인 중 재테크에 한두 번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솔깃한 마음에 주식시장에 들어갔다가 깡통을 차고, 상가 등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물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인 연 2%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시대다. 그러니 재테크시장에 자연스럽게 몰리게 된다. 경험이 적은 사회 초년병 김과장 이대리들은 리스크가 크다. 오늘도 재테크 시장에서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고 있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결혼 엎을 뻔한 주식 실패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손모 대리는 3년 전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손 대리는 예비 신부 이모씨와 각각 500만원을 모아 손 대리의 통장에 넣어뒀다. 1000만원으로 청첩장 인쇄, 웨딩촬영, 신혼여행 비용 등을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연은 이랬다. 손 대리는 1000만원을 묵히고 있는 게 아까워 대학 동기가 추천해 준 주식에 투자했다. 계좌에 며칠만 넣었다 조금 오르면 되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식을 사자마자 하한가를 몇 번 맞더니 가격이 ‘반토막’이 나버렸다. 더 이상 속일 수 없게 되자 손 대리는 결혼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신부인 이씨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침착하게 답했다. “오빠, 우리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손 대리는 손발의 지문이 없어지도록 싹싹 빌고,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 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손 대리 집의 경제권은 아내가 쥐고 있다고 한다.

대형 금융사에 다니는 신모 대리도 얼마 전 크게 ‘혼쭐’이 났다. 석 달 전 부서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이틀 걸러 한 번씩 야근을 하는 시기였다. 중간중간 임원급에 제출하는 보고서 때문에 팀장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고 실무자인 신 대리를 수시로 불러 세세한 사항을 확인하고 되물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신 대리는 모바일 주식거래를 계속했다. 화장실에 가서도, 일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종목 주가를 확인했다. 그러다 팀장이 불러도 주가를 체크하느라 답을 못하는 일이 생겼다. 팀장으로부터 눈물 빠지게 꾸지람을 들은 신 대리는 이후 주식 투자를 정리했다. “한 달에 몇 푼 벌려다 직장에서 쫓겨날 뻔했다니까요.”

직장내 재테크 ‘조심 또 조심’이 원칙

중견 공기업에서 일하는 이모 주임은 두 달여 전에 주식 거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주위에서 직장 동료들이 주식 얘기를 할 때마다 소외되는 느낌이 들어 거래 방법이라도 알아보자는 차원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50만원 이내의 ‘소액’ 투자만 했다. 그러던 게 요즘에는 200만~300만원 수준까지 커졌다. 액수가 커지니 업무 시간에 주가를 체크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는 컴퓨터에 아예 ‘보안 필름’을 깔았다. 필름을 컴퓨터 모니터에 씌우면 바로 정면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화면이 안 보인다. 이 주임은 “동료들에겐 시력이 나빠져 눈을 보호하기 위해 필름을 붙인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주식을 하다 등 뒤로 누군가 온다는 느낌이 들면 재빨리 미리 준비해 놨던 업무 화면으로 바꾸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정보기술(IT)업체에서 일하는 홍모 과장은 ‘부동산 재테크’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서울 오류동의 조그마한 오피스텔을 5500만원에 구입했다. 금융위기 때여서 비교적 싸게 구입한 데다 처음에는 월 50만원씩 꼬박꼬박 월세를 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성공적인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주변에 오피스텔 공급이 크게 늘자 상황은 바뀌었다. 경쟁이 붙으면서 월세가 45만원, 40만원 이렇게 떨어지더니 최근에는 30만원대까지 주저앉았지만 세입자 찾기는 더 어려웠다. 딱히 오피스텔 시세가 오른 것도 아니어서 홍 과장은 난처해졌다. 최근에는 정부가 임대주택의 일종인 행복주택까지 주변에 공급한다고 발표해 홍 과장은 ‘패닉’ 상태다. “인근 오피스텔들이 중국 관광객을 데려와 호텔처럼 숙박시키는 일도 봤습니다. 손해를 메우기 위해 비어 있는 집을 용도를 바꿔 편법으로 쓰는 것이죠. 저도 이 같은 유혹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기본과 원칙 있는 재테크, 성과도 좋아

국내 중견 제약업체 4년차인 곽모 대리는 최근 한 유명 인터넷 재테크 카페에 가입한 뒤 열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곽 대리가 카페 가입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일명 ‘적금 풍차돌리기’다. 매월 10만원씩 1년 만기 적금통장을 새로 만들어 납입하는 방식이다. 처음 1년간은 조금 지루하지만 그 뒤부터는 매달 만기가 된 적금이 돌아오기 때문에 돈 불리는 재미를 쏠쏠히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카페에서는 재테크의 ‘기본’으로 통한다. 곽 대리는 이 카페에서 돈을 모을 수 있는 다양한 ‘짠돌이’ 스킬을 획득한 것에 만족한다. ‘아이스커피 컵 재활용하기’ ‘상품권 받으면 충동 구매하지 말고 무조건 현금화하기’ 등 아이디어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 휴대폰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해지한 뒤 지인들에게 데이터 선물받아 쓰기를 시도했습니다. 잠깐 무안하긴 하지만 의외로 친구들이 거리낌 없이 선물해 주던데요?”

김동현/안정락/황정수/김은정/임현우/김인선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