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낀 油化 "그나마 에틸렌이 효자"
업황 부진으로 시름이 깊어가는 국내 유화업계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시적인 공급 부족 탓에 반짝 경기를 타면서 실적 하락 속도를 늦추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19일 글로벌 에너지 석유화학 정보업체인 플래츠에 따르면 에틸렌 가격은 지난 7월부터 4개월 연속 t당 1500달러를 웃돌고 있다. 지난 6월 t당 1447달러(월평균 기준)였으나 이후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서 9월 1542달러까지 올랐다. 이달 들어서도 t당 1520~1540달러 선으로 강세다. 에틸렌은 합성수지 필름 파이프 등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다.

반면 에틸렌의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은 지난 7월 t당 962달러였으나 원유가 하락 여파로 8월부터 줄곧 하락세로 돌아서 이달 들어 778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이 때문에 나프타와 에틸렌 간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스프레드는 지난 6월 t당 483달러에서 최근에는 744달러로 벌어졌다.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내리는데도 에틸렌 가격이 강세를 띠는 것은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등 에틸렌 생산업체들이 하반기 들어 일제히 생산라인 정기보수에 들어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공급 축소 효과가 더 컸다는 얘기다.

네덜란드의 셸 무어데이크가 대대적인 설비 보수를 위해 연산 90만t의 에틸렌 공장을 내년까지 가동 중단한 데 이어 일본 미쓰이 시바NCC는 연산 55만t인 공장의 가동률을 90%대에서 60%로 낮췄다.

국내에서는 LG화학(200만t)과 여천NCC(191만t)가 이달부터 정기 보수에 착수해 에틸렌 공급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80만t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춘 싱가포르 셸도 조만간 연말까지 정기 보수에 들어간다.

에틸렌 강세로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갖춘 유화업체들이 수혜를 보고 있다. 연 47만t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대한유화는 3분기 영업이익이 3년 만의 최고치인 200억원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량 대부분을 자체 소화하는 LG화학과 SK종합화학 등은 에틸렌 덕분에 사업 전체적으로 수익 감소를 상쇄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에틸렌 효과’가 장기화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NCC업체들의 정기 보수가 내년 초에는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이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보다 30~40% 저렴한 석탄으로 에틸렌을 생산하는 석탄화학 설비를 확충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김평중 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중국이 석탄화학설비를 통한 에틸렌 생산 비중을 2012년 5%에서 2016년 23%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에틸렌 등을 생산하는 국내 NCC업체들이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