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품 수입규제 급증…버티던 수출마저 '진퇴양난'
#1. 미국의 철강업체 노스웨스트파이프 등 8개사는 한국 및 터키산 송유관 제품에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해달라며 지난 16일 미 상무부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를 제기했다. 동부제철 현대하이스코 등 13개사가 대상이다. 대상 제품은 API 용접강관으로 미국석유협회의 품질 인증을 받아 유정 등에서 사용하는 배관용 파이프 제품. 미 철강사들은 한국산 제품에 58.83~221.5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관련 한국 제품 수입액은 지난해 5억5500만달러, 올 상반기 2억4100만달러에 달했다.

#2. 인도네시아는 지난 5월 한국산 면사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상품의 수입 급증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인상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하는 등의 긴급수입제한 조치다. 인도네시아는 세이프가드 조치 1년차에 한국산 면사에 ㎏당 2만8065루피아(약 2500원), 2년차에 2만5522루피아, 3년차에 2만2979루피아 등 3년간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버팀목인 수출마저 진퇴양난이다. 최근 원·달러와 원·엔 환율 급락으로 가격경쟁력이 타격을 받은 데 이어 주요 수출시장인 유럽 국가들의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산 제품에 대한 각국의 수입규제와 통관분쟁까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한국은행은 이처럼 불안한 수출전선을 반영해 당초 3.8%로 잡았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5%로 뚝 떨어뜨렸다.

◆사상 최악의 수입규제

19일 한국무역협회와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규 수입규제 건수는 26개국, 36건(조사 중인 건수 포함)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3년 이후 매년 10건 미만이었지만 2010년부터 급증세를 타 올 들어서도 이미 21건에 달했다.

더욱이 수입규제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심각하다. 2010년까지 한국산 제품을 거의 규제하지 않던 호주는 2011년부터 매년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12년까지 매년 한두 건의 수입규제를 발동했던 인도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6건으로 수입규제를 대폭 늘렸다. 브라질, 콜롬비아, 미국, 캐나다 등 북미·중남미 국가들도 2012년 이후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급증하는 수입규제는 한국 수출기업들에는 직격탄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입규제 조치를 당한 철강·금속, 화학, 섬유, 전기전자 등 94개 한국산 품목의 총 수출액은 2011년 110억달러, 2012년 90억달러, 2013년 76억달러로 연평균 17%씩 감소했다.

여기에다 관세청이 집계한 결과 해외에서 한국 수출기업들이 겪고 있는 통관분쟁 건수 역시 지난해 395건으로 사상 최대였다. 통관분쟁 건수는 2000년 연간 30건에 불과했으나 13년 만에 13배 넘게 증가해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장기불황에 보호주의 확산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길어지면서 각국 내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수입규제와 통관분쟁이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관세청 관계자는 “장기화하는 경기불황 속에 한국 수출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자 수입규제 조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국의 제조업 육성 의지가 강한 인도는 최근 3년 새 14건 등 지금까지 한국산 제품에 28건에 이르는 수입규제를 했다.

미국의 경우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1년 동안 한국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단 4건에 불과했지만 2011년 이후 올해까지 4년간 6건의 수입규제를 발동했다. 특히 미국 철강업계의 이번 한국산 API 용접강관 제소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국산 철강제품을 겨냥한 다섯 번째 반덤핑 제소이자, 세 번째 상계관세 제소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의 대니얼 이켄슨 무역정책연구소장은 지난 8월 미 상무부가 예비판정과 달리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해 반덤핑 결정을 내리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고려”라고 지적했다. 미국 철강업체 및 노조가 수입규제를 강하게 요구하자 중간선거(11월4일)를 앞둔 오바마 행정부가 표심을 의식해 번복했다는 설명이다.

제현정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세계적인 철강산업 과잉설비 문제와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지속되는 한 한국산 제품 수입규제는 크게 개선되기 힘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심성미/임원기 기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