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차이나' 한국 추격 시작됐다
산업 고도화를 꾀하기 위해 주요 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는 대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중국공업정보화부는 지난 16일 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기업들이 참여한 1200억위안(약 20조8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지원 펀드 구성을 마치고 투자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위험 부담이 큰 산업의 특징을 감안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반도체산업 육성에 1조위안(약 173조4600억원)을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펀드 자금을 활용해 현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SMIC, 화훙그레이스 등이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서면 삼성전자 등과의 기술격차를 단시일 안에 줄일 수 있게 된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반도체 국산화를 통해 정보기술(IT) 등 전후방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취지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예로 들면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는 20나노급을 양산하고 있지만, 중국은 45나노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AP를 수입해야 하는 이유다.

허성무 KOTRA 다롄무역관 부관장은 “지난해 중국의 시스템반도체 수입액은 원유보다 많았다”며 “자국 업체의 기술 수준을 높여 외자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조선산업을 집중 지원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2020 해양플랜트산업 발전계획’을 마련, 국영 석유·가스회사와 조선사들이 협력해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지원 업은 中업체, 시스템 반도체 개발 '가속'

'반도체 차이나' 한국 추격 시작됐다
이번 펀드 조성은 중국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에 따른 것이다. 지원책에는 △반도체 산업 진흥을 위한 별도 부처 설립 △핵심장비 자체 개발 △소득세 인하 등 각종 세제혜택 △양안(중국, 대만) 간 경제 협력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지원 방안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매년 20%씩 반도체 산업 매출을 증대시키고 2030년 세계 선두권 반도체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펀드 방식으로 지원 자금을 마련한 데 주목하고 있다. 류펑 중국 산업과학기술발전연구소장은 “중국은 과거 액정표시장치(LCD)산업을 지원할 때 무상으로 자금을 지원하다가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등 실패를 맛봤다”며 “지금은 철저하게 성과에 연동해 대출 형식으로만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투자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이 세계 1위인 메모리반도체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분야는 기술 격차가 워낙 크다”며 “삼성전자가 이제껏 투자한 돈이 100조원이 넘는데 아무리 중국이라도 이만한 돈을 단기단에 투자할 순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스템 반도체다.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최근 28나노 AP 개발을 완료했다. 물론 삼성의 14나노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28나노도 중저가 스마트폰에선 충분히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 정부의 자금력이 더해지면 갤럭시노트4 등 고급 스마트폰에 쓰이는 20나노 AP는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AP뿐 아니라 지금도 중국이 어느 정도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센서, 전력관리 반도체 등도 마찬가지다.

중국 완성품 업체들이 중국 반도체를 선호하는 것도 한국엔 위기 요인이다. 펑은린 SMIC 부사장은 “같은 성능이면 중국 완성품 업체들은 당연히 외국보단 우리 제품을 찾는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SMIC가 동부하이텍의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중국 정부가 양안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TSMC 등 대만 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SMIC 지분도 갖고 있다.

허 부관장은 “중국 기업에 투자해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국 정부 펀드를 활용하는 ‘역발상’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베이징=김동윤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