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대기업 '제로 성장'
지난해 한국 대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 3%로 2012년(2.3%)에 이어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원화 강세 여파로 수출 경쟁력도 약화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2013년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매출은 전년보다 0.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증가율은 관련 통계가 대·중소기업별로 작성된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됐던 2009년(0.7%)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번 조사는 임업이나 공공행정·사회복지 등 영리법인 비중이 낮은 업종과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의 49만2300여개 영리법인을 대상으로 했다.

대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11년 13.1%에서 2012년 5%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0.3%까지 곤두박질치는 등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미래산업연구실장은 “매출 증가율은 기업의 성장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라며 “그동안 고도성장을 질주해온 한국 대기업들이 심각한 저성장 증후군에 직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0.3%…대기업 '제로 성장'
환율 하락·中 거센 추격에 수출 대기업 '기진맥진'

매출 부진은 원화 강세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1095원4전으로, 2012년 평균(1126원88전)보다 31원84전 떨어졌다. 이를 반영해 지난해 수출물가지수는 93.69(2010년 100 기준)로 2012년(97.87)보다 4.3% 하락했다. 수출기업이 같은 물건을 팔아도 손에 쥐는 원화 액수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수출 물량은 늘었다. 지난해 수출물량지수는 125.99(2010년 100 기준)로, 2012년 120.22에 비해 4.8% 높았다. 윤재훈 한국은행 기업통계팀 차장은 “물량이 늘었음에도 환율 하락 등으로 수출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출 대기업들의 원화 표시 매출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석유 화학 금속 전자 등 주력 수출제품들이 중국 제조업의 약진과 선진국 시장의 경쟁 심화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금속제품 분야의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8.4%로, 2012년(-2.6%)보다 더 악화했다. 석유 화학의 매출 증가율도 2012년 3.2%에서 지난해 -0.7%로 돌아섰다. 2012년 11.7%에 달했던 전기전자의 매출 증가율도 지난해 4.6%로 크게 둔화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제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12년 4.2%에서 지난해 0.5%로 하락했다. 제조업 매출액이 0%대 증가율을 나타낸 건 1998년 외환위기(0.7%) 때 외에는 없었던 일이다. 제조업과 비제조업을 합한 전 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12년 5.1%에서 지난해 2.1%로 큰 폭 하락했다.

그 여파로 대기업의 수익성 역시 제자리걸음을 했다. 2011년 5.3%였던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2년 4.7%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에도 4.7%로 제자리에 머물렀다.

반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은 소폭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10.6%였던 중소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12년 5.3%로 떨어졌으나 지난해 5.6%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매출 영업이익률도 3.1%(2011, 2012년)에서 3.2%로 소폭 상승했다. 윤 차장은 “중소기업은 수출보다는 내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원화 강세 요인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전망은 더 어둡다. 우선 원·달러 평균 환율은 작년보다 낮을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1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042원81전으로 지난해 평균(1095원04전)에 비해 50원 이상 낮다.

여기에 삼성전자 스마트폰 등이 지난해에 비해 부진하고 조선·플랜트 업체들도 해외 경쟁사들의 부상과 세계 경기 침체로 수익성 악화에 기진맥진해 있는 상황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기업들은 환율 등 대외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 능력을 키우고, 신흥시장을 개척해 수출지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책 당국에는 “기업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책들에 대한 규제완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