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오른쪽)과 이탈리아 사회학자 카를로 보르도니. 두 명의 사회학자는 신간 《위기의 국가》에서 “국가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고 각자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동녘 제공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오른쪽)과 이탈리아 사회학자 카를로 보르도니. 두 명의 사회학자는 신간 《위기의 국가》에서 “국가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고 각자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동녘 제공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체결로 유럽엔 주권 국가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40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국가의 개념은 명확하다. 하지만 국가의 본질은 그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다. 유럽에서 국가가 정확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책마을] 권력 상실·정치 공백…국가는 무능력해졌다
폴란드 출신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과 이탈리아 사회학자 카를로 보르도니는 《위기의 국가》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는 서구 국가를 주제로 깊이 있는 대담을 나눈다.

두 학자는 현재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국가 단위의 문제를 ‘위기’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이들이 본 국가의 위기는 ‘권력과 정치의 분리’에서 비롯된다. 바우만은 권력과 정치를 “국가의 구조 능력에 대한 믿음을 떠받치고 있던 것”이며 “사회 현실을 관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정의한다. 권력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처리할 능력이고, 정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결정할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바우만은 하지만 국가는 이전까지 갖고 있던 권력의 많은 부분을 초국가적 세력에 양도하거나 빼앗겼다고 분석한다. 권력의 강제력이 약화된 데다 정치적인 통제 밖에 있는 권력들의 도전까지 받는 것이 위기를 맞은 국가의 상황이다.

보르도니의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권력 상실은 경제 정책의 약화를 낳고 이는 공공서비스 약화로 이어진다”며 “국가의 위기는 국가가 경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이런 무능력의 결과로 적절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없는 데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이로써 위기의 국가는 공공복지를 제공하고 보장하는 기구가 아니라 시민에 빌붙어 스스로의 생존에만 신경 쓰는 ‘기생충’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유럽을 비롯한 서구에 닥친 위기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보르도니는 근대와 탈근대의 위기, 정치의 공백기를 주장한다. 반면 바우만은 ‘액체 근대 이론’의 틀 안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우만은 지금 시대의 질서와 제도가 고체처럼 견고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을 ‘액체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적절한 수단은 경제뿐”이라며 “체제가 사회적 통제력을 획득해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이들이 회복되고 최우선의 권리들이 부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경제적 위기의 희생자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고립된 채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냉정히 바라본다.

책표지엔 괴수 ‘리바이어던’이 그려져 있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는《시민론》과《리바이어던》에서 근대국가의 모습을 제시했다. 인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의 권리를 일부 포기했다. 홉스의 개념은 사람 개개인이 뭉쳐 그려진 리바이어던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표지의 리바이어던은 곳곳에서 깨지고 무너져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다. 바우만은 국가와 시민 간의 끈은 약해지고 사회는 응집력을 잃은 채 ‘액체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학자는 국가의 위기 시대에 개인과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새로운 국가의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